경영권을 물려받은 2세들이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본격적인 신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는 기존 사업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전략적 행보이자 자신만의 경영 성과를 입증하기 위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시장은 이들의 M&A를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닌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며 주목하고 있다. <IB토마토>는 각 그룹의 기존 사업과 신사업 현황을 짚어보고, 이들이 그리는 성장 로드맵을 조망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동원그룹이 지난해 창립 55년 만에 2세 경영을 시작한 이후 신사업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은 2014년 부회장에 오른 뒤 지난 10년간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직접 지휘하며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고, 최근에는 동원F&B의 100% 자회사 편입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다만 아직까지 2차 전지 소재 등 식품 외 분야에선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어 향후 M&A에 따라 그룹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좌우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서울 서초구 동원그룹 본사 사옥(사진=동원그룹)
동원F&B 자회사 편입으로 경영 효율화
동원그룹은 지주사인
동원산업(006040)이 동원F&B, 동원로엑스, 스타키스트,
동원시스템즈(014820), 동원건설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구조다. 과거 지주사였던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상장사인 동원산업과 2022년 합병하면서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동원그룹이 올해 상장사인 동원F&B를 상장폐지하고 자회사로 편입한 것도 지배구조 단순화를 통한 경영 효율성 강화 차원으로 풀이된다.
동원그룹은 크게 수산·식품·포장·물류를 4대 축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식품을 담당하는 동원F&B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올 1분기 기준 매출 구성을 보면 식품가공·유통 부문이 69.5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물류(12.03%), 포장재(11.76%)가 그 뒤를 잇는다. 참치 원양어업 등 전통적인 주력 분야였던 수산 부문 매출은 3.73% 수준에 불과하다.
동원그룹은 최근 몇 년간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주사인 동원산업은 2022년 처음으로 매출 9조원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지만, 2023년(8조9486억원)과 2024년(8조9442억원) 연속으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한계에 직면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뒤따랐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실적만 놓고 보면 반등에 성공하는 분위기다. 동원산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4조67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 늘었으며, 영업이익은 32.7% 증가한 2585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관련 업계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실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동원F&B를 중심으로 펫푸드, 떡볶이 등 전략 품목의 미국 수출이 본격화됐고, 조미김과 음료도 아시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나면서 전체 수출액이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기 때문이다. 동원F&B의 글로벌 수출 비중은 지난 5년간 2%대에 불과했다.
앞서 동원산업은 동원홈푸드 등 식품 계열 4개사를 '글로벌 식품 디비전'으로 통합하고, 해외 공략 본격화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회장이 2008년 야심차게 인수한 미국 최대 참치 통조림 브랜드 스타키스트의 유통망을 적극 활용해 북미는 물론 중남미 지역까지 판로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참치 등 어가 하락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한 수산 부문도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성장성이 제한적인 분야로 평가됐지만, 동원산업의 별도 기준 상반기 매출액은 5793억원, 영업이익은 11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9%, 49.7% 증가하면서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동원F&B 관계자는 <IB토마토>에 “2030년까지 식품부문 매출 10조원 이상, 전체 그룹 매출 16조원 달성이 목표”라며 “특히 펫푸드, 한식 밀키트, K-소스 등을 통해 식품 부문 수출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려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원시스템즈 진천사업장(사진=동원시스템즈)
2차 전지 등 신사업 성과는 '미미'
동원F&B는 중장기 비전으로 글로벌 식품기업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가운데 지난해 매출의 0.3%에 불과했던 연구개발비 비중을 2030년까지 3배 이상인 1%대로 확대하고 통합 글로벌 R&D센터를 통해 신제품 개발 역량을 강화키로 했다. 매출 10조원 돌파를 위한 M&A 가능성도 내비쳤다.
관련 업계에선 동원그룹의 주력인 식품사업이 국내에서
CJ제일제당(097950),
오뚜기(007310) 등 강력한 경쟁자들과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어, 글로벌 진출을 위한 M&A가 유력하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K-푸드 열풍으로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공격적인 시장 개척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동원F&B는 최근 파일럿 사업을 통해 글로벌 사업 확장 가능성을 타진한 뒤, 현지 반응과 성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시장 점유에 나서는 전략을 짜고 있다.
다만 식품사업 외 추진한 신사업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꼬리표로 남아있다. 특히 동원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2차전지 소재 사업의 경우 기술장벽이 높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동원시스템즈는 2019년부터 축적한 포장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용 알루미늄 양극 박과 배터리 캔, 셀 파우치 등을 개발해왔지만, 2차전지용 알루미늄 박 분야는 이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020150) 등이 선도하고 있고, 글로벌 플레이어들도 뛰어든 시장이다. 지난해 동원시스템즈의 2차전지 부문은 155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올해 들어 동원산업의 주가가 크게 오른 것과는 반대로 동원시스템즈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동원산업은 올해 초 3만원대에서 출발해 지난 달 5만원대를 돌파한 반면 동원시스템즈는 4만원대에서 출발해 3만원 선을 간신히 유지 중이다. 2021년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사 MKC를 인수했지만, 아직까지 미미한 성과로 인해 2차 전자 관련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김남정 회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하려면 비식품 분야에서 더 많은 성과가 필요하다”며 “그룹 차원의 굵직한 추가 M&A가 식품 분야냐 아니면 비식품 분야냐에 따라 방향성이 좌우될 것”이라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