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 맞은 사모시장)②커지는 사모 크레딧…기관투자자 '눈독'
몇 년 새 급성장…초기 단계지만 성장세 가팔라
국내 LP 해외투자 확대…국내 펀드 신뢰 필요
공개 2025-06-20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6월 18일 10:51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사모펀드(PE) 시장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상장사 인수 확대와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참여, 제도적 기반 강화 등이 맞물리면서 PE 시장의 역할과 위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단순한 자본 공급자를 넘어 시장 재편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사모펀드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국내 사모 크레딧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 대출보다 유연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위험·중수익의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연기금·공제회를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적극 참여하는 추세다. 특히 금리 인하 사이클이 도래하면서 은행과 사모펀드 간 신용공급 역할 분담이 재정립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모 크레딧은 전통적인 은행대출이 아닌 사모펀드 등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대체신용 시장을 뜻한다. 은행이 아닌 민간 투자펀드가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직접 대출하거나 채권을 인수한 뒤, 이자로부터 수익을 올려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사진=픽사베이)
 
사모 크레딧 시장, 폭발적인 성장세…LP 관심 높아져
 
글로벌 사모 크레딧 시장은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 강화로 인한 은행 대출 축소와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투자자들의 수익률 추구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사모대출펀드 운용자산 규모는 2008년 약 3000억 달러에서 2019년 1조원을 넘긴 이후 2023년 약 1조7000억 달러까지 폭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주요 평가기관들은 앞으로도 글로벌 사모대출 운용자산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대체 투자 시장 분석업체 프레퀸에 따르면 2022년~2026년 글로벌 사모대출펀드의 연평균 성장률은 17.4%에 이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28년 사모대출 운용자산 규모가 3조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2010년 7월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으로 은행에 대한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미국 투기등급 기업 대출 중 은행의 비중은 1994년 70%에서 2010년 10%까지 줄었다. 은행들이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자, 사모 대출펀드들이 이들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며 은행 대출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사모 크레딧 시장은 해외에 비하면 아직 발전 초기 단계지만,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사모 대출형 펀드는 2016년 전문사모펀드의 기업대출 가이드라인이 도입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어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모펀드 운용사가 직접 대출펀드를 운용할 수 있게 되자 해당 펀드 설립이 크게 늘어났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에 본사를 둔 주요 사모 크레딧 운용사들의 총 운용자산은 약 20조원 규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사모 대출의 유형별 비중은 메자닌 37%, 직접대출 35%, 특수상황펀드 23%, 부실채권 4%, 벤처채권 1% 등이다.
 
저금리 사이클 도래, 관련 제도 정비 등으로 사모 크레딧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올해 초 한 언론사가 진행한 국내 연기금·공제회·보험사 CIO 대상 설문조사에선 30.8%의 응답자가 가장 유망한 대체투자 자산으로 사모 대출을 꼽아 부동산, 사모주식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위험·중수익 전략으로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추구하면서도 주식보다는 안정적인 자산으로 주요 LP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위험·중수익' 투자 강화…국내선 '트랙레코드 부족' 평가
 
국내 최대 LP인 국민연금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사모 크레딧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사모대출 분야 투자액은 약 5조363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조2823억원 증가,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11.9%를 차지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에서 크레딧·부실자산 펀드 부문을 신설하고 최대 3500억원까지 출자하는 계획을 발표, 본격적으로 중위험·중수익의 사모신용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크레딧 펀드는 대출채권,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RCPS), 교환사채(EB) 등 신용성 증권에 80% 이상 투자하도록 규정되었고, 목표 내부수익률(IRR)은 7~8%다. 특히 국민연금의 사모펀드 전략별 비중을 보면 경영권 인수 목적의 바이아웃이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사모대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향후에도 사모 크레딧 펀드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외 국내 주요 LP들도 사모대출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은 지난해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사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약 20% 수준에서 40%까지 두 배로 확대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공무원연금공단도 2022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골럽캐피탈, 베어링 등 해외 사모대출 위탁운용사 선정을 통해 총 1억5000만 달러를 출자하는 등 규모를 늘리고 있다. 군인공제회도 지난해 최초로 크레딧 분야 출자에 나서면서 주목을 받았다. 교직원공제회,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굵직한 주요 LP들은 대체투자에서 사모대출 비중을 강화하는 추세다.
 
다만 국내 주요 LP들의 사모대출 출자 비중이 해외에 집중돼있다. 경기 하락에 따른 신용 스프레드 확대 우려로 인해 우량 등급 채권에 선별 투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글랜우드크레딧과 스틱인베스트먼트, IMM 등이 사모 크레딧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운용 규모나 실적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주요 LP들은 글로벌 업무집행조합원(GP)에 출자하는 것이 내부적으로 리스크 설명과 책임소재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다고 전해진다.
 
사모펀드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LP들의 출자 기준이 까다로워 국내 GP가 운용하는 사모 크레딧 펀드에 대한 신뢰는 아직까지 더 쌓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들은 은행 대출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고, 사모 크레딧이 개입 가능한 중견기업이 적어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딜 소싱이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주요 은행들이 건전성 문제로 공략하지 못하는 분야에선 성장세가 예상된다”라며 “특히 저성장 시대에선 사모 크레딧이 틈새 시장을 파고 들어 또 다른 기업금융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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