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진짜 위험(Risk)은?
홍콩 H지수 ELS 피해 규모 '눈덩이'
은행 직원 말만 듣고 투자했다가 피해
손익은 투자자의 몫, "충분한 준비 필요"
공개 2024-01-23 06:00:00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17:5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 앞에 모인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출처=연합뉴스)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 H지수)' 사태가 심상치 않다.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손실액이 21일 기준 KB·신한·하나·우리·NH 등 5대 시중은행에서만 2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의 80% 이상이 시중은행에서 판매됐다. 확정 손실률만 52.8%에 달한다. 홍콩 H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10% 넘게 급락한 탓이다. 손실률이 60%로 늘어날 경우 원금 손실 규모가 상반기에만 6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중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한다. 홍콩 H지수 ELS는 3년 뒤 만기가 됐을 때 가입 당시보다 지수가 ‘기준 폭’을 넘어 떨어지지만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결국 비정상적인 지수 폭락만 없으면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다. 현재는 해당 지수가 2021년 고점 대비 60% 가까이 추락한 상황이라 대규모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홍콩 ELS 사태에서 보듯 ELS는 자칫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날릴 수 있는 고위험·고난도 투자상품이다.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은행 이용자들이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ELS를 선택한 이유는 2019년 당시 코로나19로 정기예금 금리가 매우 낮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2021년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가중평균금리(1년 만기 기준)는 연 0.91~1.79% 수준이다. 홍콩 H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이래로 장기간 하락장이 없어 ELS로 손실이 발생한 선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저금리 시대, 기대수익률 3%가 넘는 ELS를 은행이 적극 추천할 만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해당 상품의 위험성은 예고됐다. 2021년 초 한 은행의 수익률 모의실험 결과를 보면 상환이 늦어질수록 손실 확률이 커지고, 손실 구간에 들어서면 원금 절반 이상을 잃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물론 은행 입장에서는 기대수익률이 3%가 넘고 3년 만기까지 여섯달마다 수익실현 기회가 부여된다는 점을 더 강조했을 것이다. 은행이 고위험 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종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 ELS로 손해를 본 투자자 대부분은 수익률 모의실험이라는 자료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막연한 지수 상승 기대감만 들었다고 주장한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노후 준비를 위해 퇴직금 전체를 투자한 은퇴자, 적금 들러 은행에 갔다가 덜컥 가입한 모녀 등 대부분 해당 상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은행 직원 말만 듣고 가입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은행 직원이 전문가니까 더 잘 알겠지’하는 심리가 작용했다.
 
하지만 “주식에 성공하려면 사업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생활필수품 하나를 살 때도 가격을 비교하며 고민을 거듭하는데,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남의 말만 듣고 냅다 던지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전문가의 조언도 말 그대로 참고일 뿐이다. 수익과 손실 모두 투자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묻지마 투자'는 도박에 가깝다. 심지어 도박을 해도 공부와 노력이 필수다. 준비가 충분치 않다면 안정적인 예금이나 적금을 선택하는 게 자산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Risk comes from not knowing what you are doing)
 
투자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투자에 있어 가장 큰 위험(Risk)은 어쩌면 본인일지도 모른다.
 
유창선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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