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송혜림 기자]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닥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영문공시 확대가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영문 전자공시시스템에서는 투자 판단에 필요한 핵심 내용이 한국어로 남아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목차와 일부 재무 항목만 영어로 표시되고 사업 설명과 위험관리, 재무제표 주석 등은 별도의 번역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언어 장벽이 여전한 만큼, 의무공시 대상 확대와 함께 외국인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문 정보의 범위와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목차명은 '영어' 내용은 '한국어'…영문공시 실효 의문
다만 전체 코스닥 상장사 수가 약 1820곳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외국인 투자 비중이 낮은 편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전무하거나 2% 이하인 기업 비중은 현재 코스닥 상장사 중 41%에 달한다.
주요 원인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의 제한적인 정보 접근성이 꼽힌다. 코스닥 상장사 중 영문 공시 제출 비율은 10% 미만으로 외국인이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공시 부재는 투자 자금 흐름이 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이나 일부 코스닥 대형주에 쏠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먼저 공시는 유형별로 관리 주체가 나뉜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소관 공시에는 사업·반기·분기보고서, 주요사항보고서, 증권신고서, 지분공시 등이 포함된다. 기업의 사업이나 재무 현황 등이 담긴다. 거래소 소관 공시는 주요경영사항 수시공시, 조회공시, 공정공시, 자율공시 등이 있다. 주가나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경영 사항, 풍문·보도에 대한 답변 등이다.
금감원은 재무정보 공시의 표준화를 위해 XBRL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XBRL은 기업의 재무정보를 국제표준에 따라 전산화해 재무정보 양식을 표준화하고 자본시장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재무제표와 주석의 표준화된 항목을 영어로 표시하거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감원이 개발한 특정 편집기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러나 영문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코스닥 기업들의 공시를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확인된다. XBRL을 활용한 영문 재무정보 제공은 확대됐지만 기업·사업 설명과 위험관리, 특수관계자 거래 등 일부 서술형 내용은 한국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한국기업평가의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기업 설명'은 물론 '위험관리 및 파생 거래', '주요계약 및 연구개발활동' 등 모든 항목들이 목차명만 영어로 번역될 뿐 내용은 그대로 한글로 표기돼 있다. 일부 표 역시 한국어와 영어가 혼재해 외국인 투자자가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 보였다. 주석은 한국어로 처리돼 해당 수치의 의미와 관련 위험을 이해하려면 별도 번역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들의 향후 실적 제고 방안이나 투자 계획을 담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나 의안 내용이나 찬반 여부를 다룬 '주주총회 소집 발표 보고서' 등도 내용이 한국어로 표기돼 있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워 보였다.
이러한 정보 격차는 기업 간 투자 유치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영문 자료가 풍부한 기업을 우선 검토하면 중소형 기업은 평가받을 기회부터 제한될 수 있다. 별도의 번역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정보 접근의 장벽이다. 전문적인 회계·금융 용어나 복잡한 계약 조건은 자동번역만으로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워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투자 판단이 늦어지거나 번역 오류로 위험 수준을 잘못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국감에서 지적했지만…영문 정보 제공 한계 여전
이미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이 도입한 XBRL 제도에 따른 전자공시시스템 영문 공시는 한글 병용 표기로 인해 공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앞서 금감원은 같은 달 ‘영문 주석 실시간 제공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이 개선됐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론 공시 데이터가 한글로 기재되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당시 이찬진 금감원장은 해당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다’며 답변했다. 그러나 국감 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러 공시에서 한국어 병용 표기가 확인되면서 개선 없는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측은 코스닥 기업들의 영문 공시가 아직 의무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차 등 일부 고정된 내용들만 영문 번역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투자자를 위한) 추가 서비스 개념으로 목차 영어 번역을 통해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면서 "법적으로 영문 공시가 의무화될 때까지는 본문 영문 제공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업의 영문공시 의무 여부와 금감원이 운영하는 영문 정보 제공 서비스의 품질은 별개의 문제다. 자율공시라는 이유만으로 본문과 주석의 언어 장벽을 남겨둔다면 영문공시 확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국감 지적은 해소되기 어렵다.
XBRL을 통한 외국인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 개선을 성과로 내세운 만큼, 한국어로 남아 있는 정보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알리고 이를 보완할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거래소 코스닥 기업 단계적 영문 공시 의무화
한국거래소는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닥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상장사의 영문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공시 부담을 고려해 대형사부터 적용한 뒤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코스닥 영문공시 의무화는 시장 세그먼트 도입 추진 시기와 연계해 2028년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부터 적용하는 방안 등이 검토 대상이다. 필요에 따라 공시 항목과 제출 기한을 완화해 적용하고, 운영 상황을 살펴 대상과 시행 시기를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적으로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영문 공시를 도입하는 추세인 만큼 다른 나라 사례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TDnet 홈페이지)
(그래픽=TDnet 홈페이지의 영문 공시)
대표적으로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4월부터 국내 코스피 시장과 비슷한 프라임 시장에 상장한 일본 내국회사를 대상으로 영문 동시 공시를 의무화했다. 기업의 번역 부담을 고려해 요약본도 허용하고 있다. 요약 과정에서 중요한 공시 항목이 누락되지 않도록 해 외국인 투자자가 주요 경영 사항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만일 일본어 결산자료에 손상차손 발생에 관한 공시를 함께 담았다면 영문자료에도 해당 내용을 포함하거나 별도의 영문 공시를 제출해야 한다. 세부 내용을 축약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여러 공시 항목 가운데 일부만 선택해 번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IR 부서 실무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영문 요약 공시 방식은 국내 XBRL 기반 영문 정보 제공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참고할 수 있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보고서 전체를 번역하는 부담을 줄이면서도 핵심 내용은 전달할 수 있어 돈이나 시간 차원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