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벨트의 한국인들)③소득 있어도 신용은 없다…텍사스 정착의 벽
텍사스 투자 확대…한국인 파견 인력도 증가
신용기록 없어 집·차 임차 난항…정착 부담
한인 단체·기관 지원에도 체류 관리엔 빈틈
공개 2026-10-15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10월 14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남부가 한국 첨단산업의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텍사스주 오스틴·테일러에는 반도체 투자가 이어지고, 조지아주 서배너 일대에는 자동차·배터리 공장과 협력업체들이 모여들고 있다. 공장을 세우고 생산라인을 가동할 한국인 엔지니어와 기술 인력도 함께 향하지만, 투자 규모와 생산능력에 가려 이들의 생활과 노동환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업무에 맞는 체류자격부터 주거와 의료, 체재비 부담까지 현장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사고나 비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 협력사와 파견근로자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IB토마토>는 미국 현장에서 생산기지를 움직이는 한국인들과 중소 협력사를 만났다. '테크벨트의 한국인들' 4부작을 통해 대기업의 해외 투자 이면을 들여다보고, 동반 진출을 뒷받침할 지원과 보호 장치를 짚는다.(편집자주)
 
※기사에 등장하는 일부 기업과 근로자는 신원 공개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습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해당 기업명과 개인 신원을 밝히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 전경.(사진=정준우 기자)
 
[IB토마토 정준우 기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만난 한국 기업 주재원 B씨는 파견 초기의 어려움으로 집과 차량을 구하는 일을 꼽았다. 회사 소속으로 미국에 왔고 소득도 있었지만, 현지에서 쌓은 신용기록이 없었다. 개인 명의로 임차 계약을 맺으려면 한국에서의 경력이나 소득과 별개로 미국에서 요구하는 서류와 조건을 갖춰야 했다.
 
삼성전자(005930)의 오스틴·테일러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과 기술 인력이 모여들고 있지만, 현지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다. 은행 업무를 보려면 예약부터 해야 했고, 병원에 갈 때는 가입한 보험으로 어떤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기업의 정착 지원에도 빈틈이 있어 현지 한인 단체와 주재 기관들이 주거·교육·법률 정보를 제공하며 이를 보완하고 있다.
 
반도체부터 철강·전력까지, 한국 기업 모이는 텍사스
 
텍사스주는 한국 기업의 주요 대미 투자 지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한국 기업의 미국 법인이 두 번째로 많은 주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부터 텍사스주 주도인 오스틴에서 반도체를 생산해왔다. 인근 테일러에 새 공장을 건설하면서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오스틴과 주변 지역에는 삼성전자 주재원뿐 아니라 장비 설치와 공장 가동을 지원할 협력사 직원들도 들어오고 있다.
 
한국 기업의 진출은 댈러스와 휴스턴으로도 이어진다. 삼성전자 북미 사업을 총괄하는 삼성전자 아메리카는 뉴저지주에서 텍사스주로 본사를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석유 생산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국 철강 기업과 전력 기기 기업, 전력 EPC(엔지니어링) 기업도 텍사스주에 진출한 상태다.
 
현지 교민 A씨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삼성전자와 그 협력사 파견 근로자만 1000명 가까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적지만, 여전히 수백명의 파견 근로자들이 오스틴 지역으로 온다는 말들이 널리 퍼져 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유입 규모를 집계한 수치는 아니지만 현지 한인사회에서도 기업 투자에 따른 인력 이동을 체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 진출 확대에 역내 한인 상권도 확장을 거듭 중이다. H마트 등 한국계 유통업체는 최근 댈러스 지역에 신규 점포 1곳을 출점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한인 1만 4000명이 늘어날 때마다 H마트 지점 1곳이 새로 오픈한다고 알려져 있다"라 말했다.
 
오스틴시 중심가 전경.(사진=정준우 기자)
 
소득 있어도 신용기록은 없어…집·차 구하기부터 난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내 신용 기록이 없어 집과 차량 임차 등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스틴에 거주하는 B씨는 미국 생활의 첫 문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지에서 일할 자격과 소득을 갖췄지만 주택과 차량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미국 내 신용기록을 따로 확인받아야 했다.
 
현지에서 '크레딧(Credit)'으로 불리는 신용기록은 금융거래 등을 통해 쌓이며, 주택 임차나 차량 금융·리스 계약 등의 심사에 활용된다. 한국에서 금융거래를 해온 파견 직원도 미국에 처음 도착하면 현지 신용기록이 부족할 수 있다.
 
B씨는 "회사 소속으로 미국에 왔지만, 임차 계약은 개인 명의로 하기 때문에 개인 신용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파견 결정과 직원 개인의 임차 계약은 별개의 절차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정착 초기에는 회사가 임시 숙소를 제공하거나 외부 업체를 통해 주거·차량 계약을 지원하기도 한다. B씨는 "회사가 임시로 아파트를 제공하거나, 파견 근로자의 미국 정착을 돕는 서비스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현지의 상황을 전했다.
 
직접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직원들은 신용기록과 소득 증빙, 은행 계좌 등 계약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B씨는 "임차 준비 기간 동안 거처 마련이나 이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량 확보는 출퇴근과 일상생활에 바로 영향을 준다. 텍사스 대도시권은 자동차 중심으로 이동하는 지역이어서 집을 구하더라도 차량이 없으면 직장이나 생활시설을 오가는 데 불편을 겪을 수 있다.
 
현금으로 차량 등을 구매하면 금융 심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일정 기간 뒤 귀국해야 하는 파견 직원에게는 구매 비용과 처분 문제가 남는다. 현지 거래 이력을 쌓는 동안 임시 숙소와 이동수단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정착 초기의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이유다.
 
은행은 예약부터, 병원은 보험 확인부터
 
은행 계좌를 만드는 일도 B씨에게는 한국과 달랐다. 그는 "은행에서 최초로 계좌를 개설할 때 예약 방문이 필요했고, 예약하지 않을 경우 추후 다시 방문해 업무를 처리해야하고, 업무 처리 속도도 한국에 비해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
 
비대면으로 처리하던 업무도 현지에서는 방문 일정과 준비 서류부터 확인해야 했다. 은행 계좌 개설이나 사회보장번호(SSN) 발급 과정이 지연되면 근무 중 시간을 내 다시 방문해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 
 
댈러스 중심부 전경.(사진=정준우 기자)
 
의료 이용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로 꼽혔다. 회사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을 이용하는 주재원과 여행자보험에 가입해 입국한 단기 파견 직원은 보장 조건과 비용 부담이 다를 수 있다.
 
A씨는 "주재원은 개인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말했다. 오스틴 지역에 거주하는 주재원들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의료보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단기 체류나 출장 목적의 근로자의 경우는 다르다. 보통 단기 파견 근로자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후 미국을 방문한다. 여행자 보험에서 지정하지 않은 병원을 이용할 경우 비싼 미국 의료비를 환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A씨는 "한국 여행자 보험이 허용하는 병원과 환급 가능한 치료를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향후 의료비 환급을 받을 수 있다"라며 "응급상황에서 급한 마음에 구급차를 부르거나 아무 병원이나 갈 경우 추후 병원비로 수천만원을 내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단기 출장 근로자들은 가급적 의료시설 이용을 최소화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주거·교육 문의까지…한인 단체가 메우는 지원 공백
 
집과 차량을 구하고 보험을 확인하는 일은 회사가 일부 지원하더라도 직원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이 동반하면 자녀 교육과 배우자의 적응까지 챙겨야 한다. 미국 진출이 처음인 기업은 현지 정보와 경험이 부족해 직원들의 문의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런 빈틈을 현지 한인 단체와 주재 기관들이 보완하고 있다. 북텍사스 한인 상공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댈러스 무역관 등은 한국 기업의 진출을 지원하면서 임직원의 생활과 관련된 문의도 받고 있다.
 
신동헌 북텍사스 한인 상공회장과 Samuel Kim 수석부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준우 기자)
 
북텍사스 한인 상공회는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단체로 출발했지만, 한국 기업의 투자와 관련 문의가 늘면서 기업 정착 지원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신동헌 북텍사스 한인 상공회장은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을 통해 학군 등 자녀 교육, 주거, 가족 동반 이주, 심지어 어떤 변호사를 만나야 하냐는 문의까지 다양한 질문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사업 운영에 필요한 정보뿐 아니라 직원과 가족의 생활 문제도 현지 한인 네트워크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KOTRA 댈러스 무역관도 주거와 사무실 입지를 알아보는 기업과 파견 직원에게 지역 정보를 제공한다.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이 매물만 보고 거주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KOTRA 댈러스 무역관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KOTRA가 보통 집이나 사무실을 구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댈러스와 포트워스 지역의 주요 거점별 특징을 설명드린다"라며 "이후 직접 매물을 구할 경우 현지 부동산 업체를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파견 근로자를 지원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비자 등 체류 문제는 파견 근로자 정주여건의 핵심이지만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비자 문제는 파견 기업이 스스로 챙겨야 할 문제라 현지 단체의 지원이 닿기 어렵다. 파견 근로자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댈러스 지역에 거주하는 교민 C씨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이후 ICE(미 이민세관단속국)이 댈러스 지역에서 대대적인 단속 활동을 벌여 외국인 근로자, 불법 체류자를 대대적으로 추방했다. 당시 단속 과정에서 한국인 근로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추방 한국인 직원이 근무했던 협력업체가 도급 계약을 해지당하기도 했다. 이후 협력사들이 체류 이슈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근로자 체류 자격을 재정비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체감되는 변화가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댈러스·오스틴=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