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BBB)④신용등급 개선의 착시…더 벌어진 'K자 양극화'
상반기 등급 상향 우위에도 BBB 기업 감소
조선·원전 신용 회복…석화·이차전지는 강등
급 유지에도 미매각…비우량채 투자심리 위축
공개 2026-08-24 07:00:00
이 기사는 2026년 08월 20일 16:0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연초 BBB급 회사채 금리가 급등한 데 이어 중앙그룹 계열사의 신용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비우량채를 향한 투자심리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공모채 시장의 문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사모채와 은행대출 등 대체 조달 수단을 찾고 있다.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한 미매각 물량은 증권사가 떠안은 뒤 기관과 리테일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BBB급이라도 재무구조와 상환능력에 따라 투자수요가 엇갈리면서 기업별 자금조달 여건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IB토마토>는 BBB급 회사채의 조달 경로 변화와 미매각 위험의 이전, 신용도에 따라 재편되는 시장 구조를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송혜림 기자] 회사채 시장의 신용등급 지표가 개선됐지만 실제로는 신용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조선·원전 등 수주 호황 업종은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신용등급을 회복했지만, 석유화학·이차전지 등 업황 부진 업종은 BBB급으로 밀려나는 등 산업별 온도차도 뚜렷했다. 특히 최근에는 BBB급을 유지한 기업마저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겪으면서 신용등급만으로 자금조달 여건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비우량채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별 기업의 등급과 함께 조달 성패를 가르는 또 다른 기준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등급표는 좋아졌는데…공모채서 자취 감춘 'BBB'
 
20일 한국신용평가(한신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5월) 신용등급 상하향배율은 3.75배로 집계됐다. 상하향배율은 신용등급이 상향된 기업 수를 하향된 기업 수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수치가 1 이상이면 기업 신용의 상승 우위 기조가 강화됐다는 뜻이다.
 
최근 한신평의 회사채 신용등급 분포 현황을 살펴봐도 하위 투자등급 기업 수는 줄고 상위 기업 수는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올해 1월과 8월 사이 신용등급 증감 추이를 살펴보면 AAA가 71곳, AA+가 49곳, AA가 57곳에서 각각 72곳, 52곳, 59곳으로 늘어났다. 반면 A급은 42곳에서 40곳으로, A-급은 20곳에서 15곳으로 감소했다. 같은 A급 안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 이하인 BBB 역시 12곳에서 6곳으로 크게 줄었다. BBB+와 BBB-은 각각 10곳, 1곳으로 변동이 없었다.
 
 
회사채 기준 투자등급 비중도 높아졌다. 지난 2024년 1월 투자등급은 전체 회사채의 92.8%(375곳)에서 이달 19일 기준 97.6%(384곳)로 상승했다. 반면 투기등급은 같은 기간 7.2%(29곳)에서 2.4%(11곳)로 큰 폭 하락했다. 투자등급은 BBB 이상, 투기등급은 BB 이하다.
 
다만 이를 회사채 시장의 신용위험이 낮아졌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전체 회사채 등급 보유 기업 수도 올 초 대비 줄어들었고, 비우량 신용등급의 감소가 모두 신용등급 상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신용 기업들이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며 등급 모집단 자체가 줄어들고, 최상위 투자등급에 조달 물량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저신용 기업이 금리 스프레드 확대로 회사채 시장에서 더 이상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서 신용평가 대상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BBB에서 A로 등급이 올라가는 사례는 제한적이고 보통 BBB 내부에서도 하향 압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원전은 A급으로…석화·이차전지는 하향
 
기업 신용등급은 단순히 재무제표의 한두 지표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내 주요 신용등급 평가사 3곳에 따르면 신용등급은 ▲재무요소(안전성·수익성·활동성·현금흐름 등) ▲비재무요소(기업이 속한 산업 전망·경영 안정성·거래 신뢰도 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신용평가사는 평가 담당자 및 기업 평가 심의위원회를 통해 각 항목별 배점을 매겨 총합산 점수를 기준으로 최종 등급을 결정한다.
 
올해 신용평가에서도 업종별 차이는 뚜렷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금융·공공·인프라 계열은 AA급 이상에 집중된 반면, 제조업 일부와 서비스업에서는 투기등급인 BB~B급까지 내려가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BBB급은 한 산업에 집중돼 있기보다는 여러 업종에서 신용도가 낮은 개별 기업들로 분산된 양상을 띠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동산신탁 ▲물류 ▲제약 ▲석유화학 ▲손해보험 ▲건설·중공업 순이다.
 
지금처럼 회사채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신용등급 하락은 리스크가 크다. 최근 한신평 등급별 금리를 살펴보면 2년물 기준 A-가 5.21%, BBB+가 7.27%다. 무려 206bp 차이가 난다. 3년물도 A-가 5.64%, BBB+가 7.91%로 227bp 차이다.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들은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할 때 이자 부담이 늘 고 차환 부담도 커진다. 
 
신용등급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산업별로도 크게 전망이 갈렸다. 먼저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BBB+에서 A로 상향된 기업들을 살펴보면 삼성중공업(010140)·한진칼(180640)·한화오션(042660)·두산에너빌리티(034020) 등 조선·원전 등 최근 수주 산업이 호황을 맞은 곳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 신용등급이 상향된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글로벌 원전시장 성장과 가스터빈 국산화 정책, 미국 AI산업 성장에 따른 발전원 수요 증가로 국내외 사업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지난 2024년 15조원 수준이던 수주잔고가 올해 3월 24조원으로 커졌다. 별도 기준 매출액도 올해 1분기 1조 71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9% 늘었다.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3조 7923억원에서 올해 3월 말 4조 4290억원으로 늘어났지만 우호적인 산업환경을 바탕으로 이익창출력이 제고되거나 차입 부담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돼 신용등급이 상향됐다.
 
또, 지난해 11월 신용등급이 상향된 한화오션도 역시 고부가 상선, 해양플랜트 및 특수선 분야 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영업실적이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수주잔고 역시 미국의 대중 항만수수료 제재에 따른 반사수혜로 중대형 컨테이너선 수주가 늘어 2024년 30조원에서 올 3월 35조원으로 늘었다. 차입금 규모는 5조원 수준으로 증가했으나 차후 신규 수주에 따른 현금 유입을 고려해 양호한 재무안정성을 유지할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A-에서 BBB+로 하향된 기업들을 살펴보면 석유화학·이차전지 등 공급과잉 및 업황 둔화 산업이 주를 이뤘다. SK어드밴스드와 동화기업(025900), 여천NCC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 신용등급이 떨어진 여천NCC는 석유화학 업황이 지난 2022년부터 과잉공급으로 인해 다운사이클에 진입하며 실적 부진을 지속했다. 올해는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화학제품 가격이 급등하며 영업실적이 크게 개선됐지만, 높은 업황 변동성으로 중단기 실적 개선 여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돼 결국 신용 하향이 결정됐다.
 
신용등급 유지해도 '미매각'…BBB에 더 높아진 '문턱'
 
올해는 신용등급을 유지하고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겪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한진(002320)은 긍정적인 전망을 받던 투자등급(BBB+)을 유지했지만 지난달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서 1년물 일부 미매각이 발생했다. 동화기업 역시 BBB+ 등급을 유지하면서 지난 5월 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BBB급은 투자등급의 최하단이라는 특성상 기관투자자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두 단계만 등급이 내려가도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어 기업 실적과 재무구조뿐 아니라 향후 등급전망까지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제이알글로벌리츠와 중앙그룹 계열사에서 잇따라 신용사건이 발생하면서 비우량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실제 최근에는 회사채 금리와 크레딧 스프레드가 동반 확대되면서 신용등급별 투자수요의 차별화도 심해지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보통 BBB급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향후 실적 악화나 차입 부담 증가로 추가적인 등급 하락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기관들이 수요예측에 참여했다"면서 "다만 올해는 비우량채 시장의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데에 이어 BBB급 회사채의 위험 대비 금리 매력이 낮다는 인식이 커져 미매각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송혜림 기자 divi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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