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 기획: 생산적 금융의 명암)①국민성장펀드 자금흐름 해부
기금·민간 75조원씩 매칭…간접투자는 속도 더뎌
200조원으로 확대…직접 지분투자 비중 늘린다
정책자금 확대·규제 완화에도 민간 매칭은 과제
공개 2026-07-28 10:30:00
이 기사는 2026년 07월 28일 10:2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저성장과 산업 경쟁력 약화가 장기화하면서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경제·금융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은행과 초대형 투자은행(IB), 보험사·연기금에는 가계대출과 부동산에 치우친 자금 운용에서 벗어나 기업의 설비투자와 사업재편을 뒷받침하고 장기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만 기존 대출에 이름만 바꿔 단 것인지, 실제 지분투자와 장기자금 공급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IB토마토>는 창간 7주년을 맞아 생산적 금융의 설계와 집행부터 금융회사의 자산 배분, 산업별 수혜 격차, 투자 성과와 회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점검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정부가 국민성장펀드 공급 규모를 기존 15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확대하며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대규모 자금 투입에 나섰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방산 등 첨단산업에 정책자금과 민간자본을 함께 공급해 부동산·담보대출에 치우친 금융의 물길을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등 실물 부문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국민성장펀드 운용 목표는 30조원 이상이다. 전체 공급 규모는 200조원으로 늘었지만 추가된 50조원의 재원 분담과 연도별 공급 경로, 지원 수단별 배분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연간 직접 지분투자 규모를 기존 3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증액분 역시 직접투자에 상당 부분 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AI제작·IB토마토)
 
6개월 만에 14.6조 승인·결성…간접투자는 더뎌
 
국민성장펀드 재원 조달의 핵심은 1:1 매칭 구조다. 기존 150조원은 산업은행이 정부보증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금융회사·연기금·기업·일반 국민 등 민간자금 75조원으로 조달하는 방식이다.
 
지원 방식별로는 인프라 투·융자 50조원, 초저리대출 50조원, 간접투자 35조원, 직접투자 15조원이다. 인프라 투·융자는 첨단기금 10조원과 민간 40조원, 초저리대출은 첨단기금이 50조원을 공급한다. 간접투자는 첨단기금 7조5000억원에 민간자금 27조5000억원을 결합하고, 직접투자는 산업은행 산하에 신설한 첨단기금과 민간이 각각 7조5000억원을 부담하는 구조다.
 
올해 상반기 가동 속도만 보면 성과는 빠르다. 지난 5월까지 16건, 12조5000억원이 승인된 데 이어 6월 말 기준 누적 승인·결성액은 21건, 14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직접투자 2조5000억원, 간접투자 1조2200억원, 인프라 투·융자 6조8700억원, 저리대출 4조100억원 등이다.
 
 
지원 수단별로는 직접투자가 연간 목표 3조원 가운데 2조5000억원을 기록해 진도율이 가장 높았다. 남은 목표액은 5000억원에 불과하다.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 리가켐바이오(141080) 등 AI·바이오 성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지분투자가 초반 실적을 끌어올렸다.
 
인프라 투·융자는 목표액 10조원 가운데 6조8700억원이 승인됐다. 국민성장펀드가 1호 인프라 금융 프로젝트로 낙점한 신안우이 해상풍력을 비롯해 국가 AI 컴퓨팅센터, 스마일게이트 데이터센터, 영양 육상풍력 등 대형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잔여 목표액은 3조1300억원이다.
 
저리대출은 10조원 가운데 4조100억원이 승인되면서 삼성전자(005930)NAVER(035420),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LS전선, 이수스페셜티케미컬(457190) 등에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자금으로 투입된다. 남은 하반기에 추가로 채워야 할 금액은 약 6조원이다.
 
가장 더딘 분야는 간접투자다. 연간 목표 7조원 가운데 상반기 승인·결성액은 1조2200억원에 불과했다.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 7200억원과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프로젝트펀드 5000억원 등이 반영됐지만, 남은 목표액은 5조7800억원으로 올해 남은 하반기에 결성 속도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대출이나 직접투자는 정부 승인 즉시 기업과 계약을 맺고 집행할 수 있는 반면, 간접투자는 자금이 기업 현장으로 가기까지 단계별 병목 현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모·자펀드 운용사 선정을 거쳐 민간 출자자 모집, 펀드 결성, 투자 대상 발굴, 실사와 투자심의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정부 입장에서는 펀드 결성액만으로 공급 실적을 쌓을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운용사 선정과 민간자금 모집, 투자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비로소 자금을 받을 수 있다"며 "민간 매칭 병목을 해소하지 못하면 외형만 커질 뿐 산업 현장이 체감하는 자금 공급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50조 더 얹은 정부, 이번엔 '직접 지분투자'에 무게
 
시장에서는 지난 15일 정부가 새롭게 추가한 50조원에 대해선 당초 10%에 불과했던 직접 지분투자 비중이 가장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뒤따른다.
 
금융위원회는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기업과 프로젝트에 대한 위험을 직접 분담하기 위해 연간 직접 지분투자 규모를 기존 3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국민성장펀드 규모가 33.3% 늘어난 데 비해 연간 직접투자는 그에 두 배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최근 정부는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 퓨리오사AI에 이어 리가켐바이오 지분 투자를 단행하면서 AI·반도체 분야를 넘어 바이오 섹터까지 직접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국가전략기술에 장기간 투자하는 가칭 한국전략기술파트너스(KSTP) 신설도 추진한다. 정부는 KSTP을 통해 5년간 최대 10조원의 장기 투자자금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민간이 투자 리스크 때문에 꺼리는 국가전략기술(양자컴퓨팅, 바이오 디지털트윈 등)의 지분 인수를 통해 모험자본 공급기구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친 상황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올해 8800억원 규모의 초장기기술투자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전략산업기금과 재정이 6800억원을 부담하고 민간에서 2000억원 이상을 모집하는 구조로, 펀드 존속기간은 최대 15년, 투자기간은 최대 7년으로 설정할 예정이다. 정책자금 비중을 약 77%까지 높여 민간의 자금 모집과 장기 투자 부담을 낮췄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관련 업계에선 증액분 50조원 중 최소 10조~15조원 이상이 직접 지분투자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나온다. 50조원에 대한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 등은 올해 가을 진행될 2027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관측이다.
 
'초장기기술투자펀드 출시 공청회' 전경(사진=금융위원회)
 
위험가중치 400%→100%로 낮췄지만…회수시장 얼자 민간은 '주춤'
 
일각에선 직접투자와 정책자금 비중의 확대를 두고 기존 민간 매칭 시스템의 한계를 정부 스스로 자인했다고 꼬집는다. 국민성장펀드는 정책자금을 마중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조지만, 기술 상용화와 투자금 회수에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원천기술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민간 출자를 기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조달비용과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장기·고위험 투자에 대한 선별 기준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펀드 결성액은 4조365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0.7% 증가했지만, 출자 증가율은 정책금융이 82.0%로 민간 부문의 19.8%를 크게 웃돌았다. 외형상 벤처펀드 시장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자금 공급의 상당 부분이 정책금융 확대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민간 금융회사의 출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자본규제를 완화했다. 국민성장펀드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정책목적 펀드에 은행이 출자자(LP)로 나설 경우 기존 400% 수준이 적용되던 위험가중치를 100%로 낮출 수 있도록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위험가중치가 낮아지면 같은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자기자본 규모가 줄어든다.
 
그러나 여전히 부진한 회수시장은 민간의 장기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IPO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모시장에서도 회수 지연이 장기화되면서 기존 펀드의 만기 대응에 급급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국내 신규 상장사가 17개, 공모금액은 1조132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55.3%, 48.7% 감소했고, 사모시장에선 만기 매물을 소화하기 위해 정책기관을 중심으로 세컨더리펀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퓨리오사AI는 민간자금 매칭 과정에서 지연을 겪기도 했다. 금융위는 지난 5월28일 퓨리오사AI에 첨단기금 3700억원을 직접 투자하는 안건을 승인, 산업은행 자체 투자와 국내외 민간 투자자금을 합친 전체 조달 목표를 8000억원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7월 초까지 퓨리오사AI의 신주 발행 규모는 약 1470억원으로, 정책자금 4000억원에 대응해야 할 민간 매칭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금 공급 규모보다 생태계 선순환 구조가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IPO와 M&A, 세컨더리 등 회수 통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민성장펀드가 공급한 자금도 장기간 비상장 지분에 묶여 민간 출자자의 재투자 여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IB토마토>에 "방향성은 매우 바람직하고 정책금융과 벤처·AI·반도체 등 미래산업 지원이 확대된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성과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유지하고 있어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들이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금융회사의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성과평가 체계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