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혈장 내재화 '양날의 검'…매출 늘고 원가도 상승
국내 혈장 자급률 10년 새 반토막…미국 현지화 선택
ABO홀딩스·알리글로 효과…혈액제제 매출 1784억
현지 비용·고환율 부담…오창 투자 회수 2030년 이후
공개 2026-07-29 07:00:00
이 기사는 2026년 07월 27일 17:12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녹십자(006280)가 추진 중인 미국 혈장 원료 현지화 전략이 외형성장과 원가 부담이라는 상반 현상을 보인다. 회사는 미국 혈액원 인수를 통해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의 현지 공급을 안정화하며 올해 1분기 실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현지 인건비와 채혈 보상금 인상, 고환율 등에 따른 원가율 상승 압박이 적지 않다. 오창공장 설비투자의 자금 회수 시점도 장기화 조짐을 보여 향후 수익성 관리가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녹십자 본사. (사진=녹십자)
 
혈장 국내 자급률 '추락'…글로벌 혈장 확보 경쟁 확산
 
27일 업계에 따르면 면역글로불린을 비롯한 혈장분획제제는 인공적인 합성도이나 유전자 배양이 불가능하고, 오직 사람의 혈액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의약품이다. 수요가 아무리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라도 원료인 혈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급 자체가 불가능해 혈장 확보량은 바이오 기업의 매출 상한선과 국가의 보건 안보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최근 세계 각국이 혈장을 단순한 의약품 원료가 아닌 국가 전략 자원으로 다루며 '혈장 자급자족'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국내 원료혈장 수급 환경은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혈장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내 원료혈장 자급률은 2015년 95.3%에서 2024년 42.9%로 10년 만에 반토막 이하로 감소했다. 국내 헌혈 실적 역시 2018년 약 308만건에서 지난해 284만건으로 7.9%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분획용 혈장 공급은 약 211만유닛에서 214만유닛으로 1.5% 증가하는 데 그쳐 폭증하는 면역글로불린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전혈에서 추출하는 혈장이 2.2% 감소한 반면, 성분채혈 혈장이 29.2% 증가해 헌혈자 감소를 한 사람당 채혈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버텨왔다.
 
글로벌 수급 지형 또한 치열한 패권주의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보고에 참여한 168개국 중 자국 혈장을 분획해 제제를 생산하는 나라는 49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119개국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거나 제제를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글로벌 원료혈장 공급의 약 70%는 유상 채혈 및 헌혈 보상제도를 운용하는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미국의 혈장 유래 제품 수출액은 2024년 기준 62억달러(약 9조원 이상)에 달하는 상태다.
 
해외 주요국들 역시 원료 확보 차질로 홍역을 겪고 있다. 일본의 면역글로불린 자국 내 자급률은 2018년 95% 안팎에서 지난해 59.4% 수준까지 급락했다. 일본 정부는 의료 성장전략을 통해 자급률 100% 복원을 목표로 2040년까지 7조 2000엔(약 69조원) 이상의 민관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분획용 혈장 수요의 40%를 미국에 의존하다 의약품 부족 경고가 발생하자 국가 혈장계획 수립을 의무화했다. 이처럼 글로벌 혈장 패권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녹십자가 해외 원료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현지로 직접 나선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원가 부담에 고환율까지…'양날의 검‘ 된 원료 내재화
 
녹십자는 국내 원료 수급의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원료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해 선제적인 현지화 승부수를 던졌다. 회사는 지난해 1월 미국 혈장센터 운영사인 ABO홀딩스를 1380억원에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현지 혈액원 7곳을 확보했으며 현재 건설 중인 텍사스 소재 혈액원 1곳이 완공되면 총 8곳의 상업 채혈 거점을 직접 지배하게 된다.
 
원료 내재화 체계 구축은 완제품의 글로벌 시장 안착과 시너지를 내며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2023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 허가를 획득한 10%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는 2024년 7월 미국에 출시돼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알리글로 처방 확대와 수요 확대에 따른 오창공장 가동률 상승(1분기 평균 가동률 74%)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외형도 성장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녹십자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4355억원으로 전년 동기(3838억원) 대비 13.49%(518억원) 증가했다. 알리글로를 포함한 혈액제제류 매출은 178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41%를 차지하며 실적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혈액제제류의 부문별 매출을 보면 해외 수출이 885억원(전년 동기 651억원), 내수가 899억원(전년 동기 839억원)을 기록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매출 비중이 가파르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미국 혈액원 직접 운영을 통한 원료 내재화는 수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제약할 수 있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현지 채혈 센터를 직접 운영할 경우, 미국 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헌혈자 유치를 위한 채혈 보상금(동기부여비) 인상분 등 현지 운영 원가를 회사가 직접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경우 달러 기준 현지 운영비와 채혈 비용이 원화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부풀려져 원가율을 직접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원료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가 오히려 영업이익률 개선을 방해하는 재무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녹십자 측은 높은 현지 판매가를 바탕으로 한 수익 구조 덕분에 리스크가 충분히 제어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측은 <IB토마토>에 "알리글로는 미국 시장에서 국내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원재료 비용 대비 매출 규모가 더 큰 구조를 갖추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환율이나 원료혈장 가격 변동이 알리글로의 실질적인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원료 확보와 더불어 생산설비 고도화 및 후속 파이프라인 확보도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녹십자는 차세대 면역글로불린 생산 및 완제 라인 통합을 위해 오창공장에 자기자본(1조 3089억원)의 10%에 달하는 약 14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신규 생산라인 투자가 즉각적인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녹십자 측은 <IB토마토>에 "신규 생산라인은 2030년 이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실제 매출은 임상 종료 및 품목허가 획득 이후 발생하는 만큼 실질적인 매출 기여는 203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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