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O 리스크)②제약업계, 면책조항 믿었다가 부메랑 맞나
정부 합수팀 가동…'위탁자 책임주의' 부각
다단계 재하청 불법 영업도 제약사 책임
8월 약가 인하 앞두고 사법리스크 확대 우려
공개 2026-06-09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6월 04일 17:2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보건복지부가 CSO(의약품 판촉영업자) 위탁계약 현황 조사에 착수하면서 제약업계에 강한 계도 신호를 보냈다. 2024년 10월 CSO 신고제 도입 이후에도 수면 아래 남아 있던 '7~8차 재위탁 벤더' 등 유통망 말단의 실태를 제약사 스스로 확인하고 입증하라는 요구다. 이에 <IB토마토>는 정부의 의약품 유통질서 투명화 기조 속에서 중견·중소 제약사들이 마주한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다단계 재위탁 구조에서 비롯되는 법적 책임 리스크를 진단하고, 향후 리베이트 적발 시 약가 인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담이 기업의 미래가치와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정부당국이 의약품 판촉영업(CSO) 시장 불법 리베이트 관행 타파에 팔을 걷은 가운데 관련 사법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제약사와 CSO간 계약서상 불법 행위 관련 면책 조항들이 사법리스크로 직결될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CSO 불법 영업을 단순 외주업체의 일탈로 치부하는 것도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서부지검. (사진=연합뉴스)
 
'무한 재하청' 사법리스크 책임은 제약사 몫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유통구조 투명화 정책의 핵심은 위탁자인 제약사의 책임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단계 재하청 구조 내 불법 영업 최종 책임은 제약 본사로 귀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행 약사법 체계상 CSO 신고제의 근간은 위탁사인 제약사가 종국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0월 신고제 시행 이후 등록된 CSO가 정부 예상을 웃도는 1만 5849곳에 달하고 이 중 70%가 직원이 한 명인 영세 개인사업자로 파악돼 다단계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제약사들이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책임을 분산시키려 하지만 사법당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CSO의 불법 영업을 단순 외주업체의 일탈로 치부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제약사가 지급하는 판촉 수수료는 자사 의약품 처방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자금이기 때문이다. 이 중 일부가 리베이트로 흘러갔다면 최종 이익을 누리는 주체는 제약사인 것이다. 즉, 하청 및 재하청 CSO의 불법행위는 제약 본사의 사법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
 
해당 법리에 따르면 그동안 제약업계가 활용해 온 "재위탁 하도급 구조를 통보받지 못해 불법 영업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은 면책 사유로 인정받기 힘들다. 위탁 계약 단계에서부터 불법 영업 방지를 위한 관리 감독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제약사는 부작위에 의한 방조 책임이나 공동정범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은 제약사가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하며 재하청 구조에서 불법 행위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할 시 미필적 고의가 성립한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계약서에 면책조항 있어도 책임 피하기 어려워
 
특히 제약사와 CSO 간 계약서에 존재하는 면책 조항들은 적발 시 제약사의 법적 리스크를 배가시키는 부메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제약사는 계약서상에 모든 불법 리베이트 책임은 CSO가 지며 적발 시 제약사는 면책된다는 취지의 조항을 삽입한다. 해당 조항은 형사책임이나 행정처분을 회피하는 도구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제약사가 불법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법적 책임만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문구를 작성한 증거로 해석해 가중 처벌의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위험은 의약품 지출보고서의 작성 및 검증 과정 부실에 있다. 약사법상 제약사는 CSO가 작성한 지출보고서 내용을 검증하고 보관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영세한 1인 CSO나 통제되지 않는 다단계 재하청 구조에서 올라온 증빙 자료를 실사 없이 그대로 반영할 경우 이는 약사법상 허위 보고 또는 작성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CSO의 증빙 부실이 제약사의 검증 시스템 미비 문제와 결합하는 순간 행정처분과 수사 대상은 대행업체가 아닌 제약사로 곧바로 전환된다.
 
위탁사인 제약사가 지게 되는 사법적 공동 책임의 법리적 근거는 형법상 공동정범 이론과 약사법상 양벌규정에 기반한다. CSO가 제약사의 묵인하에 처방 대가로 금품을 제공했다면 두 주체가 공동정범으로 묶인다. 법인 대표나 임직원, 대리인의 업무상 위법 행위에 대해 법인에게도 동시에 벌금형을 과하는 양벌규정에 기인한다. 제약사 법인 자체의 형사처벌과 대규모 품목 허가 취소, 약가 인하 등 치명적인 행정처분이 불가피한 것이다.
 
즉, 불법 리베이트 등 부실한 내부 통제 시스템은 제약 본사를 향한 직접적인 사법리스크로 이어진다. 오는 8월1일부터 시행 예고된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과 맞물려 수익성 압박을 이기지 못한 제약사들이 CSO에 무리한 수수료를 주며 영업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은 현시점에서 관련 사항은 제약사에게 큰 리스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 상황이 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약가 인하 앞두고 매출 방어하려고 CSO를 최근에 시작한 곳들도 있는데 좀 무리한 조사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라며 "아무래도 CSO 신고 의무에 기대다보니 본사 의지대로 관리가 되기는 어려운 상황도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CSO 업체 한 곳과 정상적인 위탁 계약을 맺어도, 그 밑에서 영업 사원들이 인맥을 통해 3차, 4차를 넘어 7·8차까지 재하청을 주는 다단계 구조를 본사에서 유령 잡듯 일일이 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라며 "이런 것들을 정부에서 문제 삼는다고 하니 이제는 영수증 하나, 증빙 서류 한 장까지 현장 실사를 나가지 않으면 언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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