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O 리스크)①제약업계 긴장…7~8차 벤더 민낯 드러나나
복지부, '국가정상화 과제'로 CSO 전수조사 착수
제네릭 난립 구조 지적 불구…직영 전환은 선긋기
공개 2026-06-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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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CSO(의약품 판촉영업자) 위탁계약 현황 조사에 착수하면서 제약업계에 강한 계도 신호를 보냈다. 2024년 10월 CSO 신고제 도입 이후에도 수면 아래 남아 있던 '7~8차 재위탁 벤더' 등 유통망 말단의 실태를 제약사 스스로 확인하고 입증하라는 요구다. 이에 <IB토마토>는 정부의 의약품 유통질서 투명화 기조 속에서 중견·중소 제약사들이 마주한 현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다단계 재위탁 구조에서 비롯되는 법적 책임 리스크를 진단하고, 향후 리베이트 적발 시 약가 인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담이 기업의 미래가치와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보건복지부가 의약품 판촉영업자(CSO) 신고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위탁계약 현황 조사에 착수하면서 제약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이번 조사를 단순한 행정 점검이 아닌 유통 투명화를 위한 사전 계도로 공언함에 따라, 중견·중소 제약사를 중심으로 내부 영업망과 벤더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제도적 검증 장치 부재로 그간 유명무실했던 '재위탁 서면 통보 의무'의 사각지대가 드러난 것도 이번 조사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1차 과제 브리핑. (사진=연합뉴스)
 
첫 전수조사…제약사들, '기록 확보' 동분서주
 
4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약품 제조·수입업자를 대상으로 'CSO 위탁계약 체결 현황 제출 협조 요청' 공문을 전격 발송했다. 정부는 유관기관에 보낸 공문을 통해 ‘CSO 신고제’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위탁계약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약사법에 근거해 자료를 수집한다고 밝혔다. 제출 범위는 CSO 신고제가 처음 시행된 2024년 10월 이후의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에 국내 제약사들은 내부사항 파악을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신고제 도입 당시 '모든 영업 벤더를 제약사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명시됐지만, 현실적으로 복잡한 하청 구조를 통제하지 못한 회사들이 내부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번 조사는 단순한 일회성을 넘어 의약품 유통 및 영업구조 전반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무조정실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발굴한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1차 과제 164개를 전격 공개했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부의 '불법적 의약품 CSO 근절'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제약사 리베이트 근절' 과제가 '법망을 피하는 편법행위' 범주에 나란히 배치됐다.
 
실제 국내 중견 제약사인 A사는 최근 거래 중인 모든 CSO 업체에 공문을 발송해 의약품 판촉영업 재위탁 상황을 전수 등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A사는 계약을 맺은 1차 CSO들에게 하부 재위탁처가 존재할 경우 몇 차 하청까지 내려갔는지, 해당 업체들이 실제로 지자체에 CSO 신고를 완료한 적법 업체인지를 확인해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위탁계약서 및 재위탁통보서는 물론 영업사원들의 CSO 법정 교육 이수 여부, 벤더들의 수수료율표까지 모두 제출하라고도 요구했다. 시장에 존재하는 'N차 벤더' 전체를 데이터화하겠다는 의도다. 또 다른 중견 제약사들도 동일한 고강도 증빙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CSO를 압박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검증 장치 부재가 키운 '미통보 재위탁'
 
제약업계가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배경으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재위탁 서면 통보 의무'의 사각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현행 약사법 제47조 제4항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CSO가 위탁받은 판촉 업무를 다른 CSO에 다시 재위탁할 경우, 30일 이내에 원 제조사(제약사)에 반드시 서면으로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규정한다. 유통 질서 혼탁을 막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업계에서는 규칙 준수를 검증할 장치가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 많다. 통보가 누락되더라도 신고제 특성상 적발 가능성이 낮아 그 사이 기존 2~3차 재위탁 수준을 넘어 본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7~8차 하청 벤더까지 시장에 등장한 사례도 있다. 불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최종 책임은 원 위탁자인 제약사에게 있지만, 정작 제약사 본사조차 자사 약을 파는 영업망의 말단에 누가 존재하는지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던 것이다.
 
제약사들은 이번 전수조사로 내부 영업망의 벤더 기록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건다. 1차 CSO가 제약사 본사의 공식 승인 없이 임의로 하청을 준 '유령 벤더'나 '하위 벤더'의 실체가 이번 조사에서 명확히 소명되지 않거나 조사 과정에서 불법 리베이트 정황이 포착될 경우 각사마다 법적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대다수 제약사는 초기 CSO 위탁 계약 체결 당시 계약서에 하부 벤더의 임의 재위탁이나 위법 행위 발생 시 원 위탁사에 미치는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는 등의 엄격한 법적 대응 가이드라인을 기재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칼을 빼든 궁극적인 목적이 CSO를 통한 '우회적 리베이트' 차단에 있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와 대외 신인도가 중요한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CSO 위탁 자체에 대한 평판 리스크가 커졌다. 하부 벤더의 일탈이 본사의 리베이트 제공으로 오인돼 사정당국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판 리스크 고조에도 불구하고 제약사들은 외주 영업비중을 축소하고 본사 소속의 내부 직영 영업망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영업 전략을 전면 수정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리스크가 아무리 커도 CSO라는 외주 동력을 포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성분과 효능이 똑같은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이 수백 개씩 난립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제품 자체의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보니 오직 영업력에 의해서만 생존이 결정된다. 고정비 부담이 큰 직영 영업사원을 유지하기보다는 판매 성과에 연동해 비용을 지급하는 CSO 위탁 구조 의존도가 커진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CSO 위탁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대폭 강화하고 벤더 통제를 엄격히 할지언정, 외주 비중 자체를 줄이고 직영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의 영업 전략 전면 수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과거 제기됐던 'CSO 수수료 상한제'는 기업 영업의 자유 침해 및 공정거래법 등 타 법률과의 충돌 우려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수수료율 직접 규제 대신 약사법상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와 이번 '위탁 현황 전수조사' 등 행정적·법적 규제 장치를 통해 불법 리베이트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칼끝을 겨누고 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이번 조사를 단순 현황 조사가 아닌 유통 투명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복지부도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시점"이라며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유통 투명성을 확립하는 등의 체질 개선에 집중하려고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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