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주년 기획:골격 수술 중인 재계)①'정의선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열쇠는 '증여'
현대차그룹 지주회사 체제 아닌 현대모비스 정점 시나리오 유력
문제는 정 부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0.32% 뿐이라는 것
안정적 지배구조 토대 마련을 위해 정 회장 지분 증여 힘 받는 상황
공개 2020-07-20 09:30:00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7일 11:16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오랜 숙제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국내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창업주 세대가 물러나고 2세에서 3세, 4세까지 경영 시대를 열며 거미줄 처럼 얽힌 지배구조 실타래는 오너가들의 경영승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21대 국회에서 177석이 된 여당은 정부와 함께 재벌개혁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직접 내기로 했고 공정위는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나섰다. 이에 <IB토마토>는 창간 1주년을 맞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현주소와 전망을 담은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현대자동차, 한화, LG, 신세계 등 국내 대표 그룹들을 4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출처/현대차그룹
 
[IB토마토 노태영 기자] 현대차(005380)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저먼트(이하 엘리엇)가 올해 초 보유지분 전량을 팔고 떠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19로 올해 지배구조 개편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란 관측이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편의 유력한 시나리오에서 최정점에 위치해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의 숙원 과제다. <IB토마토>가 자동차 및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정 부회장이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현대모비스(012330) 지분을 증여받는 안이 일단 복잡한 셈법을 피하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17일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올해 코로나19로 해외주주들을 대상으로 현지 IR(투자설명회) 행사도 못 여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멈춘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다만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인물인 하언태 현대차 사장이 지난해 승진하면서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여전히 유력하다"라고 말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모듈 및 애프터서비스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086280)와 합병한 후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한 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라고 요구했다. 8조3000억원 규모의 배당도 요구했다.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 등이 엘리엇의 주장에 힘을 실으면서 현대차그룹이 원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됐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지주회사 체제는 쉽지 않은 안이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탓에 여러 계열사가 공동으로 투자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제조업에서 모빌리티 등 미래자동차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다.
 
결국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기존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안이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핵심회사인 현대차 지분 21.43%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현대모비스(존속법인)→현대차→기아차(000270) 등의 구조로 이어지는 방안이다. 
 
인수합병(M&A)에 정통한 IB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의 시도와 무산, 소문 등이 무성했지만 기존 안을 벗어나는 묘안은 없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이라며 "이 모든 그림은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 지분이 미미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현재 주력 계열사인 현대자동차(2.62%)와 기아자동차(1.74%), 현대모비스(0.32%) 지분이 적다. 따라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23.29%)를 이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이유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모비스를 존속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후 상장하는 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라며 "상장사인 현대모비스 사업회사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비율은 주가에 따라 결정하면 되고 현대모비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상장 후 엑시트 할 기회가 있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이 또한 합병비율이 정 부회장의 지분이 거의 없는 현대모비스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면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첫 단추로 복잡한 분할·합병·상장 이전에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증여받는 안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정 부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가족 간 지분을 갖고 다투는 경영권 분쟁 소지도 없다"라며 "아버지 정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는 것이 세금을 내더라도 가장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정몽구 회장 지분 증여세. 출처/사경인 회계사
 
가령 정 회장의 지분 중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7.13%)을 정 부회장이 증여받는다고 하면 세금은 약 8535억원을 내야 한다. 지난 14일 종가 기준 정 회장의 지분 평가액은 1조4233억원에 해당한다. 실제 세율 60%를 적용했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강사인 사경인 회계사는 "현행 상속 및 증여 세율의 경우 30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50% 세율인데 최대주주의 경우 20%를 할증하여 실제세율은 60%에 가깝다"라며 "증여받는 사람을 여럿으로 나누거나 10년 단위로 나누어 증여하면 세부담을 줄일 수 있기는 하지만 금액이 수십억 일 때의 얘기이고 이 경우에는 의미 있는 차이는 없다"라고 분석했다.
 
정의선 부회장 배당수취액. 출처/삼성증권
 
정 부회장 입장에서 지배구조 개편의 첫 단추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기 위해 8500억원 가량은 여력이 충분하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정 부회장의 배당 수취액(연봉 포함)은 연 420억원 수준이다. 현대글로비스를 포함한 보유지분의 가치는 지난 3월 기준으로 2조6000억원에 달한다. 
 
정 부회장의 아버지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취득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일 뿐이다. 증여는 잡음 없이 가장 심플한 방법으로 보인다. 이후 자연스레 정 회장의 다른 계열사 지분 취득 수순으로 이어지면서 또 하나의 핵심 사안인 순환출자 구조를 깨기 위한 기아차와 현대제철(004020)의 현대모비스 지분 23.07% 처리에 이목이 집중된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칼라일그룹 초청 단독대담에서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투자자들과 현대차그룹 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여러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어떤 묘안을 내놓더라도 그 시작은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노태영 기자 no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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