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탑, CB발 '최대주주 교체' 가시방석
CB 전환가능 주식수 최대주주·특수인 지분보다 많아
CB에 콜옵션 붙어있어…행사권리 최대주주 류지훈 사장이 보유 중
공개 2020-04-10 09:20:00
이 기사는 2020년 04월 09일 11:19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제분업체 한탑(구 영남제분)이 발행한 전환사채의 전환가능 주식수가 최대주주 보유지분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최대주주인 류지훈 한탑 사장이 별안간 불편한 상황을 맞게 됐다. 다만 전환사채에 콜옵션 행사권리가 걸려있고, 해당 권리도 류 사장이 인수한 상태이므로 실제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콜옵션 행사 마감일이 6월 말로 연장된 상태라 류 사장이 향후 3개월간 보여줄 움직임 또한 주목받는 상황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한탑(002680)이 2018년 말 발행한 제1회 사모 전환사채(CB) 중 149만9452주가 전환청구됐다. 전환규모는 현재 발행주식총수의 7.21%다.
 
전환가액 재조정(리픽싱) 이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전환권이 행사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 등으로 한탑 주가는 3월 중순에 주당 1180원까지 하락했다가 반등했고, 그 결과 CB 전환가액도 리픽싱 최대한도인 주당 1834원까지 낮아졌다. 최초 발행가액은 주당 2619원이다. 한탑 CB는 다수의 자산운용사가 갖고 있다.
 
금번 전환청구로, 한탑의 지분율 지각변동 가능성도 갑자기 주목받게 됐다. 리픽싱 후 전환가능 주식수가 923만5856주로 불어났는데, 이는 현재 한탑 최대주주인 류지훈 한탑 사료사업부·경영지원부 사장과 특수관계자 주식 보유량 합계를 소폭 넘어서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류 사장과 특수관계인의 한탑 주식 보유량은 전환가능 주식수보다 14만주 가량 부족한 923만5856주에 불과하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류 사장 입장에서는 그리 편한 상황도 못 되는 형국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결과적으로 한탑의 수익성 악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CB가 발행된 2018년의 한탑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796만원에 불과했다. 이자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적자를 본 셈이다. 동 기간 한탑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22억원이었다.
 
영남제분의 사명 변경으로 탄생한 한탑은 매출의 40% 가량을 제분업에서, 25%는 사료제조업에서 창출하고 있다. 한탑이 2012년을 기점으로 사업다각화를 본격 추진했으므로, 나머지 매출인 35%를 의료기기 제조, 산업용 보호필름, 수입차 판매 사업 등에서 내고 있지만, 일단 종속기업의 실적도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게다가 주력 사업인 제분업이 사실상의 완전경쟁체제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출혈경쟁에 따른 수익성 압박도 지속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 결국 한탑 입장에서도 '점프'를 위한 동력이 필요한 셈이다.
 
자금조달이 필요했지만, 당시 한탑은 담보여력 등이 대체로 충분치 않아 은행 등으로부터의 차입금 조달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탑의 2018년 연결 기준 유형자산·투자부동산은 507억원인데, 보험상품 제외 담보로 설정된 금액은 494억원을 기록했다.
 
한탑이 최초 전환가능 주식수를 총 발행주식수의 24%까지 늘리면서 CB를 조달하게 된 이유다. 실제 한탑은 CB로 조달한 자금 172억원 중 “타법인 증권 취득”에 1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탑은 결국 CB 발행자금을 지분 취득에 이용하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실적이 더욱 악화된 탓이다. 한탑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영업이익 마이너스(-) 78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고, 그 과정에서 조달자금은 운전자본과 기존사업 유지 등에 투입된 형국이 됐다.
 
즉, 수익성 확보를 위해 CB로 자금을 조달받았지만, 실적 악화가 성장 동력 확보 여지를 짓눌렀고,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전환가액 리픽싱을 유발하게 된 셈이다.
 
한탑이 생산하는 중력밀가루. 한탑은 영남제분의 사명 변경으로 탄생했다. 사진/한탑
 
다만 류지훈 사장의 최대주주 지위가 침탈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환사채에 중도상환청구권(콜옵션)이 포함됐는데, 류지훈 사장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 지난해 말 한탑의 행사 가능 콜옵션 권리 전량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한탑의 콜옵션 행사가능율은 45%다. 즉, 류 사장이 상환이자 포함 80억원 내외의 자금을 지불하면 콜옵션 전체를 우선적으로 행사해 400만주가 넘는 지분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최대주주 변동 가능성은 단숨에 사라진다.
 
게다가 한탑은 최근 콜옵션 행사 가능일도 연장했다. 그 결과 콜옵션 행사 마감일은 올해 3월19일에서 6월19일로 3개월 늘어났다. 여기에 우호지분도 고려할 수 있다.
 
류 사장이 보유한 콜옵션 권리는 말 그대로 권리일 뿐, 실제로 행사된 것은 아니다. 결국 류 사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자금으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전환가액을 단순 대입했을 때, 류 사장 일가 보유 지분과 전환가능 주식수의 차이인 14만주에 대한 가격은 2억6000만원 가량에 이를 전망이다.
 
콜옵션이 행사되면, 한탑 CB를 보유한 운용사는 남은 물량을 전환해 추가 엑시트를 고민할 수도 있다. 한탑 주가는 현재 2000원대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일단은 전환가액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탑 주식의 거래량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단기성 호재가 없다면 차익실현이 장기에 걸쳐 이뤄질 수도 있다. CB에 4%의 만기이자율이 붙어있으므로, 그대로 보유할 가능성도 있다.
 
한탑 관계자는 “당사 최대주주가 콜옵션 행사 권리를 확보했고 행사 가능 기한도 연장했다”라면서 “권리가 제3자에게 양도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대주주 자리가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류지훈 한탑 사장은 2006년부터 지속된 승계작업으로 현재의 지분을 거머쥐게 됐다. 류 사장의 부친이자 한탑을 20년 넘게 이끌던 류원기 전 한탑 대표이사는 사명변경 직전인 2014년에 대표이사에서 사임했고, 2016년 초에 지분 12%를 류지훈 사장에게 넘기며 일선에서 물러난 모양새를 취했다. 사명변경과 승계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일각에서는 한탑의 움직임이 류 회장 일가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사건을 극복하려는 데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냈다.
 
현재 한탑 경영은 류 전 회장 뒤를 이은 강신우 대표이사가 도맡고 있다. 강 대표는 한탑의 유일한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최대주주인 류지훈 사장은 등기임원에 있지 않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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