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윤상록 기자] 지정학적 리스크가 벤처투자 시장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과거 벤처캐피탈(VC)이 투자를 꺼리던 방산 분야가 인공지능(AI)과 무인체계, 센서 등 첨단기술과 결합하면서 주요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디펜스테크 기업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잇따르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K-방산 수출 확대를 배경으로 투자업계가 관련 기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실제 국내 VC와 자산운용사들은 최근 열화상카메라 기술을 보유한 방산기업에 대한 투자를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AI제작·IB토마토)
지정학적 리스크 속 글로벌 방산 기업 '주목'
21일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인공지능(AI) 국방 플랫폼 기업 안두릴인더스트리즈(Anduril Industries)는 50억달러(한화 약 6조 97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미주 지역 투자 유치 규모 3위에 해당한다.
유럽에서도 방산 스타트업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독일 무인드론 시스템 기업 스타크(STARK)는 2분기 5억 8000만달러(한화 약 8085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세쿼이아캐피탈과 파운더스펀드, NATO 혁신펀드 등이 투자자로 참여했고, 유럽 지역 투자 유치 규모 7위다.
핀란드 마이크로 위성 제조·운영 기업 아이스아이(ICEYE)도 투자 업계 주목을 받았다. 올 2분기 11억 6000만달러(한화 약 1조 6168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아이스아이 측이 방산 시스템 통합 부문 확장 계획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만큼 향후 성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2분기 글로벌 벤처 자본의 방향은 지정학·안보 변수와 함께 변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유럽에선 디펜스테크가 VC 투자 금기 영역에서 주류 영역으로 진화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각국 정부의 자주적 방위 역량 개발 노력이 이 같은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디펜스테크와 더불어 스페이스테크도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민간 우주항공·위성통신 기업 스페이스X(SpaceX)의 나스닥(NASDAQ) 시장 상장 후 스페이스테크 기업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투자 업계는 여러 국가들의 자주국방 기조 속 방산 기업 투자 매력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방산 기업이 무조건 안정적인 투자처인 것은 아니다. 수출통제와 정부 규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특정 국가의 국방예산이나 조달정책, 국제 정세에 따라 사업환경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기술력을 갖췄더라도 실제 양산과 정부 조달, 수출 계약까지 이어지지 못하면 투자금 회수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진=삼정KPMG)
국내 VC도 투자 검토…정책금융도 방산 스타트업 연결
글로벌 시장의 변화는 국내 벤처투자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형 디펜스테크 투자가 활발한 단계는 아니지만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도 K-방산 수출 호조와 맞물려 디펜스테크 기업으로 벤처 자금 유입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열화상카메라 전문 A사는 최근 투자 유치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VC와 자산운용사 등이 A사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A사는 열화상카메라·영상처리플랫폼 등 무인이동체용 핵심 센서 기술을 고도화하며, 지상·해상·항공 등 도메인에서 적용 가능한 차세대 센서를 활용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정책금융기관도 방산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산업은행)은 지난 18일 방산·피지컬 AI 등 국가전략산업 분야 유망 기업 투자 유치 지원을 위해 'KDB 넥스트라운드 스페셜라운드'를 개최했다. 국가 안보의 중심축인 K-방산이 수출 성장동력으로 언급되는 가운데,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지원하고 국내 방산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다. 이날 방산 스타트업 4곳이 투자 유치를 위한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하고 VC 투자자들과 투자 가능성을 모색했다.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미주·유럽 중심으로 디펜스테크 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서도 기술력과 공급망을 갖춘 방산 기업 중심으로 투자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IB토마토>에 "최근 한 방산 기업 투자 검토를 진행했다"라며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맞물려 방산 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실제 투자 집행으로 본격적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단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투자 검토와 IR 등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향후 방산 스타트업의 후속 투자와 대규모 자금 조달 사례가 이어지는지가 국내 디펜스테크 투자시장 확대를 가늠할 지표가 될 전망이다.
윤상록 기자 ys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