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장민지 기자]
삼성SDI(006400)가 유럽에서 산업가속화법(IAA) 입법 논의가 본격화되자 이를 통한 반사이익으로 유럽시장 실적과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IAA는 유럽에서 생산한 부품으로 차량을 제조할 경우 완성차 업체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법안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취지가 깔려 있어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비롯한 유럽산 부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삼성SDI는 유럽 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계 배터리 조달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체들을 겨냥해 물량 공급을 늘리고 있어 향후 IAA 시행과 맞물리면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삼성SDI)
EU 탈중국에 사활…유럽향 외형 성장 기대감 '확대'
19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회(EP)는 다음 달 2일 산업가속화법(IAA) 관련 합동공청회를 열고 입법 논의를 본격화한다. IAA는 유럽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으로 완성차를 제조해야 유럽 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최종 법안 확정과 시행은 2027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셀을 포함한 핵심 구성요소 3개 이상이 유럽산이어야 하며 시행 3년 후에는 셀·양극활물질(CAM)·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5개 요소로 요건이 강화된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유럽 생산 배터리를 사용해야 관공서와 공기업 대상 공공조달 입찰 자격을 받을 수 있고 보조금·세제감면 같은 정부의 재정지원도 받을 수 있다. 탄소배출 규제 이행실적을 계산할 때도 유럽산 인증 차량은 우대를 받아 규제 초과에 따른 벌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IAA 자체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생산 비중을 끌어올리려는 취지로 설계된 법안인 만큼 이 같은 혜택에 접근하려는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산 대신 한국 기업의 배터리를 쓰는 편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구조다.
이에 따라 해당 법안의 반사이익으로 삼성SDI의 유럽향 배터리 판매량 증가와 시장 점유율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는 대형화·고용량화·셀투팩(CTP) 접목에 유리한 각형 배터리 선호가 뚜렷해지고 있어 삼성SDI가 현지에서 각형 기반 프로젝트 수주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별도의 대규모 신규 투자 없이도 헝가리 거점 각형 생산라인으로 원산지 요건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프=AI 제작·IB토마토)
무엇보다 삼성SDI의 유럽향 매출은 급격한 하락세를 이어오던 상황이라 해당 법안은 실적 개선의 발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국 업체들의 저가형 배터리 공세와 전기차 업황 둔화가 겹치면서 유럽 시장에서 외형 확대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시장에서의 매출은 2022년 8조 4566억원에서 2023년 10조 7605억원으로 27.2% 늘며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2024년 6조 9139억원, 지난해 5조 3376억원으로 2년 연속 급감했다. 정점이던 2023년 대비 지난해 매출은 50.4% 줄어든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8% 감소한 2조 2689억원에 그치며 하락세를 지속했다.
특히 유럽은 과거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던 시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매출 감소는 뼈아픈 지점이다. 2022년 42%였던 유럽 시장의 매출 비중은 2023년 50.2%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40.2%로 낮아졌고 올해 상반기에는 30.9%까지 떨어졌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간 미국이 아닌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가 중국 점유율을 뺏어오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삼성SDI는 경쟁사 대비 우수한 자금력과 각형 폼팩터 경쟁력을 바탕으로 IAA 시행에 맞춰 중국 업체의 점유율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의존도 높은 완성차 공략…생산능력도 선제 '확보'
삼성SDI는 이러한 시장 상황에 발맞춰 유럽시장 공략을 재정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계 배터리 조달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체들을 공략해 공급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인 폭스바겐그룹과 BMW그룹의 중국계 배터리 조달 비중은 지난 4월 누적 기준 각각 65.2%, 76.3%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회사는 이 두 곳을 포함해 실제 수주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4월20일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차세대 전기차용 고성능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다년 계약을 체결했고 이 밖에도 BMW향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폭스바겐향 리튬·인산·철(LFP) 각형 배터리, 벤츠향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각형 배터리 수주까지 확보했다. 통상 배터리 양산 라인 구축과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부터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능력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생산거점인 헝가리 공장에서는 라인 전환이 진행 중이다. 기존 라인 가운데 2개 이상을 LFP용으로 전환할 계획으로 물량 기준 20~24GWh 수준의 추가 생산능력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SDI는 올해 하반기 중 다수의 유럽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LFP 각형 프로젝트 수주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기도 했다.
IAA 도입 논의와는 별개로 유럽 전기차 시장 자체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우호적인 요인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국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재도입하거나 확대하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시장에서는 올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전년 대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SDI는 이 같은 수요 회복에 발맞춰 헝가리 공장 가동률을 하반기 중 7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여기에 내년 이후 시행될 IAA까지 맞물리면 유럽향 물량 확대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가 한층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IAA 최종안에서 한국산 소재와 부품의 원산지 인정 범위가 어디까지 확정되느냐가 여전히 관건으로 남아 있다. 유럽경제지역(EEA) 생산분만 유럽산으로 인정할지 한국처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의 생산분까지 동등하게 인정할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 헝가리 현지 셀 생산과 한국산 소재 공급망을 연계해 대응할 수 있는 폭이 커지지만 반대로 좁게 확정될 경우 수혜 폭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유럽 IAA 법안과 관련해 긍정적인 전망이 있는 건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다만 유럽에서 역내산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각형 배터리를 선호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 삼성SDI가 각형 폼팩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춘 점과 헝가리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주요 부품과 소재 공급망도 구축해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해 올해 유럽 내 침투율이 20% 중반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장민지 기자 wkdalswl0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