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1년 넘게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관리, 가상자산거래소 지분 제한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입법 일정도 잇따라 밀렸다. 특히 은행 중심 컨소시엄이 발행사의 과반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이른바 '51% 룰'이 여전히 최대 쟁점으로 남아 있다. 법제화가 늦어지는 사이 은행·핀테크·플랫폼 등 각 업권은 공개 행보를 자제하면서도 제도 시행 이후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IB토마토>는 멈춰선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를 각 업권의 시선에서 들여다보고, 발행부터 유통·결제까지 이어지는 시장의 주도권이 어디로 향할지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진행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정부도 통합 법안 마련을 예고했지만 구체적인 제출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업권에서는 사실상 연초 대비 정치권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경쟁 심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은행권은 법제화 이후 열릴 결제·송금 시장을 겨냥해 물밑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은행연합회)
법안 1년 넘게 계류…정부 통합안도 아직
지난해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계류된 지 1년을 넘겼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을 시작으로 관련 법안이 잇따라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법제화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블록체인 기술과 인공지능(AI)기반의 금융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디지털자산의 제도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발의됐다. 국내 현행법상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디지털자산 생태 전반을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디지털자산의 개념을 명시하고, 디지털자산 사업자의 유형별 인가는 물론 투자자 보호, 업권 자율규제기구 강화 등의 개념이 포함된다. 핵심 자산인 스테이블코인 자산에 대한 사전 인가제를 도입해 디지털자산 시장을 확립하고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사전 인가제 부분을 금융권은 눈여겨 보고 있다. 단순 신고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건에는 5억원 이상 자기자본 등이 있으며, 실제 환불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핵심 요건 중 하나다.
해당 법안에서는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즉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법조계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업자는 금융위원회 인가를 사전에 획득하고 환불 계획 등 안정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 인가 요건은 이후 하위 법령을 통해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지난해 6월11일 발의 후 두 달 뒤인 8월26일 정무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여전히 의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 본회의 의결 등 입법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일시 정지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시됐으나, 논의에 속도가 붙지 못하는 데는 발행 주체에 대한 이견이 주효했다.
법안에서는 발행인을 금융위 인가, 자기자본, 환불준비금, 재무건전성 등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발행 주체와 은행 지배력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탓에 입법 과정이 지연됐다. 특히 6월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TF가 사실상 중단되고, 정무위 구성이 바뀌면서 절차적 지연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 정부와 금융위가 기존 의원안을 기본으로 2단계 입법 정부안을 추가로 발의하겠다고 보고하면서 초점도 정부안에 맞춰지는 모양새다. 법조계는 이후 정부안이 통과된 후 입법 본격적인 입법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9월 초 공식 입법 발의가 추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51% 룰' 여전히 쟁점…은행권은 선점 경쟁
입법 논의를 가로막은 대표적인 쟁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은행 51% 룰'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51% 룰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하되 은행권이 전체 지분의 50%+1주, 즉 과반을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과 이용자 보호 등을 이유로 은행 중심 발행 구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핀테크와 플랫폼 등 비은행권에서는 은행 중심 구조가 고착될 경우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사실상 은행에 집중될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역시 은행 지분 51% 이상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51%룰이 힘을 받을 가능성은 안정성에 있다. 은행을 중심으로 발행할 경우 예금 대신 스테이블 코인 보유액이 커지거나, 결제할 때 비교적 사고 대처에 원활하다는 평가다. 환불받지 못할 우려에 대한 대응도 문제다. 준비자산을 안전자산으로 구성해도, 코인런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용자 보호에서 부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이미 금융감독원의 감독하에 건전성 등을 관리해 비교적 규제와 감독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준비금 관리를 강화하고, 스테이블코인 상환 능력을 확보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핀테크나 플랫폼 등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사실상 은행에 치우쳐져 독점체제로 가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은행들이 주도권 승기 잡기에 적극적인 것은 추후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익성으로 이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고 이용자가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까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점을 선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행과 준비자산 관리부터 유통, 결제, 송금까지 이어져 새로운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서 고객과 기업의 결제망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준비자산 관리도 도맡을 수 있다.
은행권은 이미 고객의 예금을 예치하고 있다는 특장점도 내세우고 있다. 발행뿐만 아니라 결제와 송금사업을 쥐게 된다면 지주 계열의 타 금융 서비스와의 연계 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 은행권은 비은행, 비이자이익 확대가 실적 확대의 동력으로 작용해 미래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사업 확장의 씨드로 삼을 수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활용 플랫폼에 따라 결제 데이터 등 데이터 확보 유불리도 갈려 업권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법안이 통과돼야 준비 중인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물밑 경쟁이 치열하지만, 법제화보다 앞설 수는 없어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