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규리 기자]
효성(004800)이 화학 계열사
효성화학(298000)의 자본잠식 위기를 막기 위해 계열사 살리기에 나섰다. 화학 부문 부진이 장기화되며 효성화학 결손금이 30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지주사가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현상이 연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효성화학 부진이 지주사 재무 부담으로 전이되는 ‘도미노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효성)
효성, 효성화학 전환사채 1000억 인수·백금 2000억 매입…공장 담보까지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효성그룹은 최근 2년간 효성화학 지원에 약 7000억원을 투입하면서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신종자본증권 2000억원과 올해 초 온산 탱크터미널 1500억원 매입에 이어, 이번에는 효성화학이 발행하는 1000억원 규모 후순위 전환사채를 전액 인수하고 효성화학이 보유한 백금 자산 2000억원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누적 지원 규모가 최근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이번 전환사채는 표면·만기이자율이 연 4%이며, 만기는 2055년 12월 3일이다. 전환가액은 3만8900원으로, 효성화학 보통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3년 내 효성화학 주식 거래가 재개되지 않을 경우 금리를 최대 연 19%까지 가산하는 스텝업 조항도 포함됐다.
동시에 효성은 효성화학의 2000억원 차입에 대해 자금보충 약정을 제공하고 담보로 울산 용연2공장 토지와 건물, 기계장치 및 베트남 법인 담보를 확보했다. 세 건의 거래가 하루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효성화학은 연말까지 약 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게됐다.
효성 측은 <IB토마토>에 “기존 사채 상환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며 “투자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자회사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효성이 효성화학을 살리기 위해 직접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주사가 계열사의 현금과 신용을 모두 부담하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효성화학의 재무 악화가 효성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효성은 현재
효성티앤씨(298020),
효성중공업(298040), 효성티앤에스 등 비화학 부문의 실적 호조로 화학 부문의 적자를 상쇄하고 있다. 그러나 그룹 내 자금 순환이 한계에 이르면 추가 지원 여력도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박소영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티앤에스 등 주력 계열사의 실적 개선에 기반해 매출 성장세와 영업이익 회복이 나타나고 있다”며 “효성화학 지원 부담은 현재 감내 가능한 수준이지만, 부진이 장기화되면 효성의 실질 재무부담과 신용 평가에 대해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발채무 노출 증가…효성 유동성도 경직 우려
이번 효성화학 지원에 따라 효성의 우발채무 위험노출액은 올 상반기 3800억원 수준에서 연말에는 75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효성화학의 영업적자가 이어질 경우 보증 이행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실제 효성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상반기 73.4%였으나, 효성화학 관련 신종자본증권 인수금액과 자금보충 약정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130% 수준으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 취득을 위해 조달한 자금이 자기자본 대비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100%를 넘어서면 차입 의존도가 높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계열사 투자 재원이 차입금으로 충당될수록 지주사의 재무건전성은 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박 연구원은 "PP사업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PRS 계약 관련 자금보충이 현실화될 경우 효성의 자체 재무구조가 약화되며 신용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효성화학이 놓인 시장 환경도 암울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주력 제품인 폴리프로필렌(PP)과 비스페놀A(BPA) 수요가 위축된 데다 중국의 증설 공세가 장기화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스프레드(제품가격과 원재료가격의 차이)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금리와 원자재 변동성까지 겹치며 효성화학의 단기 실적 개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상반기 효성화학의 결손금은 3241억원, 부채비율은 498.5%로 자본잠식 경계선에 근접했다. 같은기간 자본금은 190억원, 자본총계액은 4569억원이다. 지난해 말 완전자본잠식에 빠졌으나 올 초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 이후 벗어난 바 있다.
또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효성화학은 그룹 내 핵심 화학 계열사이지만 납사 가격 하락과 고금리가 맞물리며 흑자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며 “지주사가 보증과 자산매입까지 동원하는 것은 채무상환 리스크가 임계치에 근접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효성 측은 이에 대해 "석유화학의 시장 침체로 전반적인 (효성화학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와 사업 부문 개선을 위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자금 지원에 대한 논의는 현재 계획된 바 없다"고 답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