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SK온이 실적 반등의 돌파구로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계 전반이 성장 정체에 부딪힌 상황에서 ESS가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자, SK온은 조직 개편과 기술 전략, 수주 확대를 통해 사업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ESS 사업을 발판 삼아 흑자 폭을 키우는 가운데, SK온 역시 빠른 추격전을 벌이며 향후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업계 안팎에선 SK온의 ESS 전략이 성공할 경우, 적자 기조에 머물던 실적 흐름에도 변곡점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SK온)
'업계 큰형' LG엔솔 쫓아 ESS 사업 확대 '속도'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계의 3분기 실적 향방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성과에 따라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ESS 사업을 본격화한 LG에너지솔루션이 흑자 폭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SK온도 발 빠르게 이 흐름에 올라타며 ESS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계 전반이 성장 캐즘(수요 정체 구간)에 직면한 상황에서, ESS가 실적 개선의 ‘돌파구’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SK온은 지난해 12월 사장 직속 ‘ESS사업실’을 신설하며 본격적인 사업 전환에 나섰다. 연구개발(R&D)과 영업으로 흩어져 있던 조직을 통합하고, 미국 현지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는 등 물리적·조직적 체질개선에 속도를 낸 것이 특징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ESS는 전기차 배터리에 이은 SK온의 미래 핵심 성장축”이라며 “고객 신뢰 기반의 안전성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온이 글로벌 ESS 시장에서 내세우는 핵심 경쟁력은 안전성이다. ESS는 태양광·풍력발전 등 간헐적 재생에너지의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설비로, 높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사업 확장의 관건으로 꼽힌다. 과거 국내 ESS 산업은 2017~2019년 잇따른 화재 사고 여파로 성장세가 꺾였고, 그 사이 중국산 배터리가 시장을 선점했다. 이 때문에 후발주자인 SK온이 시장에서 차별화를 확보하기 위해 ‘안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SK온은 ESS 전용 고안전 솔루션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액침냉각 기술을 앞세우고 있다. LFP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이 높고 화재 위험이 낮다는 점에서 북미를 중심으로 시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액침냉각은 배터리 모듈을 냉각액에 직접 담가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발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어 ESS 안정성 강화에 유리하다. SK온은 이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북미 ESS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특히 최근 북미 시장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망 인프라 확충 정책 등으로 ESS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2028년까지 글로벌 ESS 시장이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SK온 입장에서는 전기차 수요 둔화로 주력 사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ESS가 실적 개선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플랫아이언 대규모 계약으로 '성장 모멘텀' 확보
업계 안팎에서는 SK온이 최근 체결한 대규모 계약은 사업 확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SK온은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플랫아이언에너지와 1기가와트시(GWh) 규모의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더해 플랫아이언이 2030년까지 추진하는 6.2GWh 규모 프로젝트의 우선협상권도 확보했다. 이 계약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최대 2조원 수준의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K온은 해당 프로젝트에 LFP 배터리와 액침냉각 기술이 적용된 컨테이너형 ESS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검증된 기술을 ESS에 적용함으로써 생산 효율성을 확보하고,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SK온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 ESS 시장 공략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추진하는 1조원 규모의 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앞두고, 생산 라인 전환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충남 서산 공장의 전기차용 생산 라인 일부를 ESS용 LFP 배터리 생산 라인으로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2차 입찰은 이르면 이달 중 공고돼 연말에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앞선 1차 입찰에서는
삼성SDI(006400)가 약 76%의 점유율로 물량 대부분을 가져갔지만, SK온은 이번 입찰에서 국내 생산 비중을 확대해 수주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국내 생산’ 항목이 평가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SK온의 라인 전환 전략이 실제 수주 결과에 직결될 전망이다.
한편 SK온은 올 상반기까지 적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원재료 가격 부담,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효과 축소 등 복합 요인이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다만 일각에서는 ESS 사업 확대를 계기로 실적 개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ESS 매출 확대로 3분기 흑자 폭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SK온 역시 일정 시차를 두고 유사한 흐름을 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SK온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ESS 사업이 이제 막 본궤도에 오른 상황이라 흑자 전환 가능성을 전망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면서도 "다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에 맞서 국내 배터리3사가 견제보다는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전방산업 악화로 기업이 어려움에 직면할 때 가장 좋은 해법은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 작업을 잘 다져놓는 것”이라며 “SK온이 ESS 사업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