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권영지 기자]
SK이노베이션(096770)이 배터리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회사는 자체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를 잡겠다는 전략을 내놨지만, 정작 업황 침체와 재무 부담이 겹친 상황 속에서 이 같은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이 아직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폐배터리 사업까지 확장하는 것이 자칫 또 다른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연구원이 폐배터리 수산화리튬 직접 회수기술 상업화 실증 설비를 통해 회수한 재활용 수산화리튬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 그룹 전체 실적 ‘발목’
19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KBR과 ‘배터리 재활용 기술(BMR) 라이선스 협력’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에 따라 KBR은 SK이노베이션이 자체 개발한 BMR 기술에 자사의 고순도 결정화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게 되며, SK이노베이션은 그 과정에서 로열티 수익을 얻게 된다.
BMR 기술은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먼저 회수해 수산화리튬으로 직접 추출하는 방식이다. 해당 기술은 기존 공정보다 효율이 높고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기술로 평가 받는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2017년부터 BMR 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며, 2021년에는 환경과학기술원에 연간 전기차 약 800대 분량의 폐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는 실증 설비를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회사는 올 상반기 연결 기준 46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5789억원의 흑자에서 불과 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SK온의 부진이다. SK온은 상반기만 1000억원대 적자를 냈으며,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는 1조86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5818억원) 대비 두 배 가량 확대된 수준이다.
배터리 부문 손실이 확대되는 이 같은 상황에서 폐배터리 사업까지 진출하는 것은 회사의 재무 리스크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폐배터리 업황 자체도 밝지 않다. 국내 최대 업체인
성일하이텍(365340)은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영업손실을 이어가면서 금융당국의 기준에 따라 ‘한계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폐배터리 시장 역시 배터리 시장과 마찬가지로 업계가 캐즘 국면에 빠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SK이노베이션이 폐배터리 사업까지 진입하는 것은 무리한 도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채비율 200% 돌파…단기 상환 압박도 가중
특히 전사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재무상태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시장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178.8%였던 부채비율은 올 상반기 202.6%로 치솟으며 적정 기준인 200%를 넘어섰다. 단기 차입 부담도 상당하다. 올 상반기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현금및현금성자산은 11조6934억원, 단기금융상품은 4981억원으로 합산 12조1915억원 수준이다. 언뜻 보면 적지 않은 규모지만,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은 8조4061억원, 유동성장기부채는 9조5371억원으로 총 17조9432억원에 달한다. 결국 단기간 내 상환해야 할 부채가 현금성자산을 6조원 가까이 초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부담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장단기차입금과 사채를 합친 이자발생부채는 45조45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44조6276억원보다 약 1조원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이자비용도 7936억원으로 전년 동기(6574억원) 대비 약 1000억원 증가했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이 폐배터리 시장 진출을 강행하는 이유는 미래 성장성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수십만 톤 규모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폐배터리에 저장된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광물자원을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기업이 자원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사가 개발한 BMR 기술을 통해 회수 효율을 높이고 단가를 낮춰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만으로는 현실적인 의문을 잠재우기 어렵다. 폐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기술력만으로는 대규모 설비 투자와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SK온의 실적 반등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사업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면 회사 전체 재무건전성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사실 당장 수익을 바라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성장가능성을 보고 진출하는 것”이라면서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우려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