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3천억 수혈로 부도 위기 넘겼지만…재무난 '상시화'
3천억 차입금 상환 위기에 대주주 유증 자금 투입
여전히 구조적 한계…차입·신용등급 등 '악순환'
스페셜티 전환 없인 수익성 회복 난망
공개 2025-08-19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8월 14일 11:04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 여천NCC가 또 한 번의 유동성 위기를 대주주 지원으로 가까스로 넘겼다. DL(000210)케미칼과 한화솔루션(009830)이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한 합작사인 여천NCC는 지난 3년간 매년 적자를 기록하며 사실상 현금창출력이 ‘제로’인 상태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전무하다 보니 운영자금 대부분을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고, 최근 3000억원 규모의 만기도래 차입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도 직면 상황까지 몰렸다. 이번에도 대주주들이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 자금 투입에 나서 위기를 진화했지만, 부진한 수익성과 재무 악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다음 고비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여천NCC)
 
차입 문턱 높아진 여천NCC…채권시장서 외면?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여천NCC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776억원, 기타유동금융자산은 396억원으로 총 1172억원에 불과한 상태다. 반면 단기성부채는 유동차입금(사채 포함) 9278억원, 유동성장기차입금 110억원, 기타유동금융부채 2억원 등 총 9390억원으로 거의 1조원에 육박한다. 이번에 한화와 DL케미칼 등 대주주들이 이 중 만기가 코앞에 닥친 3000억원을 상환해줬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단기성부채는 여전히 6390억원으로 현금성자산 규모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
 
채권 발행 등 차입 여건도 많이 악화됐다. 신용등급 하락과 업황 부진이 맞물리면서 일부 기관투자가가 투자 대상에서 여천NCC를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투자 유니버스’에서 제외된 것은 회사에 매우 치명적이다. 회사채 주 수요처인 자산운용사·증권사 풀에서 빠지면 공모채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모채로 눈을 돌리더라도 금리 혜택 없이는 투자 매력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도 여천NCC의 여신한도 축소에 나서고 있다. 2022년 여천NCC의 원화약정한도는 6600억원, 외화약정한도는 약 1조3063억원이었지만, 최근 각각 3000억원과 1조1116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는 회사채·차입금에 붙은 각종 재무 약정이다. 공모채 관리 계약에는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사모채의 경우 신용등급이 BBB+ 이하로 떨어지면 만기와 관계없이 즉시 상환해야 한다. 일부 사채에는 ‘크로스디폴트’ 조항이 적용돼 한 건의 디폴트가 다른 차입에도 연쇄적으로 번질 수 있다.
 
앞서 지난해 말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여천NCC의 신용등급을 A+에서 A0로 내리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꾼 바 있다. 이후 업황 부진이 심화되면서 현재 등급은 A-에 머물고 있고,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시장에서는 BBB+로 강등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여천NCC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에다 올 상반기 실적도 좋지 않다. 신용등급도 떨어지다 보니 시장에서 회사 채권 수요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창출력 ‘제로’…포트폴리오 다변화 ‘시급’
 
실적 역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2분기 IR자료에 따르면 여천NCC로 인해 발생한 지분법손실이 829억원에 달한다. 이를 고려하면 여천NCC의 2분기 순손실은 약 1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분기 순손실 600억원대에서 적자 폭이 1000억원 가량 불어난 셈이다. 주력 제품인 에틸렌·프로필렌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중국발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마진이 급격히 악화된 탓이 크다.
 
업계 안팎에서는 석유화학 업황이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여천NCC가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 구조를 고수할 경우 수익성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화학업체들이 과거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통해 불황을 뚫었던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여천NCC의 경우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MTBE, 벤젠, 톨루엔, 자이렌, 스티렌모노머(SM) 등으르 생산하고 있는데 모두 나프타 분해를 통해 얻는 범용 올레핀·방향족 계열 기초화학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주로 폴리머(PE, PP, PVC), 합성고무, 용제, 플라스틱 원료 등 2차·3차 화학제품의 원료로 쓰이지만, 자체적으로는 부가가치가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스페셜티 화학제품은 전자재료와 기능성 수지, 고성능 첨가제, 의약·농약 중간체, 특수코팅재 등처럼 차별화된 기능과 고마진 구조를 가진 제품군인데, 여천NCC 제품 목록에는 이에 해당되는 품목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 여천NCC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자체적으로 공장 운영 효율화 등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재무적)상황이 워낙 급하다보니 운영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단계이고, 시간이 좀 지나고 회사가 안정화되면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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