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재계의 거센 반발을 샀던 집중투표제 의무화, 3% 의결권 제한 조항 등을 담은 2차 상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 8월 국회에서 여야 간 재논의를 거쳐 통과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만성 저평가 기업이나 지주사 체제인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얼라인파트너스 사무실(사진=얼라인파트너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차 상법 개정안 통과 시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저조한 주주환원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은 주로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 국내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금융지주들의 배당 확대를 이끌어냈고,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등은
KT&G(033780)를 상대로 지속적인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가하는 등 관련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만성적 저평가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선 낮은 PBR와 이익대비 배당수익률이 낮은 기업들 상대로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배당성향이 낮다고 평가되는 기업들은 올해 들어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효성, 상법 개정으로 올 들어 시총 2배 '껑충'…아직도 저평가?
대표적으로 지주사인
효성(004800)의 경우 지난해 4분기 기준 PBR는 약 0.67배 수준으로, 시가총액이 순자산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지만,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인한 기대감에 올 들어 2배가량 증가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보면 주당순자산(BPS)은 13만131원으로, 현재 주가인 8만7200원(7일 종가 기준)보다 약 1.5배 높다.
효성은 지난해 기준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2.38%에 이르지만 배당수익률은 3.43%에 그쳐 배당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계열사의 호실적에 계열사를 중심으로 주주환원을 늘리는 모습을 보이자 시장에선 지주사인 효성도 배당을 확대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효성이 지분 32.47%를 보유하고 있는
효성중공업(298040)은 미국·유럽의 전력기기기 수요 확대에 힘입어 실적이 증가하자 지난해 기업 출범 후 첫 배당을 실시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효성중공업의 시총은 약 11조4000억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효성의 경우 아직도 저평가 상태라는 분석이다. 효성이 가진 효성중공업 지분 가치만으로도 3조7000억원을 넘겨야 하지만 효성 시총이 1조5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선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에도 저평가가 해소되기엔 멀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밸류업 정책 시행으로 인해 올해 초 배당을 확대한 금융사들의 주가가 상승했다면, 최근에는 상법 개정에 따른 기대감으로 대기업 지주사들의 주가가 오르는 추세”라며 “지주사들의 저평가 문제는 만성적이다. 저평가가 계속된다면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전했다.
LS·한진 등 지주사 체제, 행동주의 표적 '우려'
이 외에도 행동주의 펀드는 만성적인 저평가와 주주환원율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상법 개정과 맞물려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선
LS(006260),
한진(002320) 등이 잠재적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이들은 최근 호반그룹이 지분을 늘리고 있는 기업들이기도 하다.
LS는 최근 전력인프라 투자 확대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하면서 현재 PBR가 약 1.17배까지 상승했지만, 보유 자산 대비 할인이 존재한다는 평가다. LS는 엘에스일렉트릭, LS MnM, LS엠트론 등 핵심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특히 시총이 약 10조원에 달하는 엘에스일렉트릭 지분 48.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단순 계산으로 해당 지분 가치만 4조원이 넘지만, LS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5.5조원 수준에 불과해 대표적인 저평가 기업으로 꼽힌다.
LS는 LG그룹에서 독립해 구자열 이사회 의장과 친인척 43명이 지분 32% 가량을 나눠 가진 지배구조다. LS가 자사주 15%(485만2462주)를 보유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호반그룹은 5% 미만 지분 취득 시 공시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는 허점을 노려 지분 3% 이상을 취득한 것으로 추측된다. 지분 3%를 보유하면 주주총회 소집권이나 주주제안권 외에도 회계장부열람권과 이사 해임 청구권까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의 경우 총수 일가의 낮은 지배력과 사법 리스크 등으로 인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략 대상에 올랐다. 최근에는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늘리며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다. 호반 측은 단기적으로는 경영 참여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확보한 지분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다르다. 한진그룹 총수인 조원태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는 총 20.23%, 호반그룹과 차이는 1.77%포인트에 불과하다.
투자 지표로 보면 PBR는 0.22배에 불과하고, 주당순자산가치(BPS)는 9만5449원으로 현재 주가인 2만1350원(7일 종가 기준) 대비 4배 이상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한진이 대표적인 저평가 기업으로 꼽힌다. 저평가 기업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가 가세한다면 우호 지분을 통해 경영권 탈취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선 당장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지는 않았지만, 낮은 PBR에 머무른 기업들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압력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어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에 분주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은 단순 단기 차익을 위한 경영권 탈취가 아닌 국내 자본시장 구조 개선을 자임하고 있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 대한 여론도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기업들의 주주환원과 기업가치 제고 노력이 강화되면 코스피 PBR 1배 이하 기업들의 재평가가 이루어져 시장 전체 밸류에이션이 상승할 것”이라며 “과거처럼 대주주 중심 경영에 안주해 저평가를 방치한다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