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오는 6월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두 후보가 본사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HMM(011200)이 딜레마에 빠졌다. 부산 해양 클러스터로 시너지를 기대하는 반면, 수도권 중심의 영업 효율성과 직원 이전 비용, 민영화 지연 등 리스크가 우려돼서다. 게다가 SK해운 인수와 공적자금 회수에도 변수로 작용하며 KDB산업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MM은 본사의 부산 이전에 따른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HMM은 올해 초 신임 대표이사에 최원혁 전 LX판토스 대표를 선임하면서 SK해운 인수에 대한 속도 조절에도 나선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HMM 경영권 매각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에 인수 작업이 전격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영진 교체와 대선 일정으로 인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일 뿐 협상은 진행 중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한앤컴퍼니와 HMM 측과의 매각 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며 “올해 3월 HMM의 신임 대표이사가 선임되면서 급하게 인수를 추진하기보단 다양한 각도에서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HMM 선박(사진=HMM)
본사 이전, 새로운 변수로 등장
HMM이 고민에 빠진 것은 SK해운 인수뿐만 아니라 민영화 추진이 지연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본사 이전 공약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선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운항 일정 조율, 화물 처리 등에 대한 운영 효율이 높아지고 출장·물류 관리 비용이 절감될 수도 있다며 긍정적 반응이다. 나아가 거대 양당 후보가 이를 추진하는 만큼 부산시와 중앙정부 차원의 투자 유치나 세제 혜택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본사 이전이 경영 환경 개선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다만 일각에선 클러스터 효과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온다. 해운업 특성상 영업 활동과 주요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항만 자체보다도 화주(화물주)와 금융기관, 무역회사 등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더 제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머스크(덴마크 코펜하겐), MSC(스위스 제네바), ONE(일본 도쿄) 등 세계 주요 해운사 대부분이 항만보다는 정책, 금융, 무역 중심지에 본사를 두고 있다. SK해운도 주요 화주인 정유·에너지 계열사 위치는 물론이고, 선박 금융을 포함한 자금 조달 업무 역시 금융 네트워크가 밀집한 서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 본사 직원들의 대규모 이전에 따른 거주 이전 비용, 조직 재편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HMM은 전체 직원 1824명 중 서울에서 근무하는 육상직은 1058명에 달한다. 이에 HMM 측은 선박에서 일하는 해상노조(HMM해원연합노조)와 사무실에서 일하는 육상노조(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HMM 지부) 등 2개 노조가 있지만, 두 노조 모두 더불어민주당 측과 부산 이전 문제에 동의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민영화 지연과 공적자금 회수 '새로운 변수'
HMM은 2023년부터 민영화를 위한 지분 매각 작업에 착수했지만, 지난해까지 진행된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16년 해운업 불황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국책은행의 관리체제에 들어갔다. 이후 정부 지원으로 회생했지만, 산업은행(36.0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67%)가 채권단으로서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있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해운산업 재건을 위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면서도 HMM을 안정적인 민간에 넘겨주겠다는 것이지만, 6조원이 넘는 매각가와 이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기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서
하림(136480)이 HMM 인수자금 약 6조4000억원 중 3조원은
팬오션(028670) 유상증자로, 2조원은 인수금융 대출, 나머지는 자체자금 및 영구채 발행 등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재무 안정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관련 업계에선 HMM이 SK해운을 인수할 경우 높아진 몸값으로 인해 산은의 자금 회수 계획이 더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이에 산은은 우선 HMM이 올해 초 발표한 최대 2조원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따른 지분 매각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HMM에 자사주를 매도할 경우 최대 7200억원가량을 회수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산은은 이를 통해 투자금 회수뿐만 아니라 BIS 자기자본비율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대선 일정이 마무리된 이후 SK해운에 대한 인수와 민영화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라며 “HMM 본사의 부산 이전시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인수금융 지원이나 인수합병 관련 세제 혜택 등 간접적으로 국내 기업의 인수 여건을 돕는 방안도 거론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본사 이전에 따른 부정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공적자금 회수라는 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라며 “산업은행이나 HMM 경영진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