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경고음)①살얼음판 걷는 건설사…'ABCP 시한폭탄' 째깍째깍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경색…'정부도 못 믿는데 기업을 믿을까'
시행사 PF 보증한 시공사 직격탄…보유한 '현금' 따라 명암 갈릴 수도
공개 2022-11-14 07:00:00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폭탄이 되어 돌아올 조짐이다. 지난 9월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이 최근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까지 이어지며 한국경제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불쏘시개가 되어 건설사에서 금융권까지 도미노식으로 잠재 위험을 키우는 분위기다. 특히 ABCP 몇 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투자자들이 차환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2007년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과 유사해 ABCP가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올 뇌관이 되진 않을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ABCP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건설사 및 금융권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IB토마토 노제욱 기자] 강원도가 레고랜드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이후 채권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강원도가 급하게 채무 이행을 약속했지만, 이미 채권 등 채권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시작된 상황에서 레고랜드가 기름을 부으면서 향후 '돈맥경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 경색으로 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행사들은 보통 부동산 개발을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켜 대출을 받고,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은 이 채권을 바탕으로 AB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인 건설사들은 시행사가 빌린 PF에 대해 지급보증 및 책임준공 약정을 한다.
 
그런데 만약  ABCP 차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던 금융사 및 증권사들이 투자 심리 위축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마냥 ABCP를 떠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시행사 PF에 대한 대출 연장 불가로 이어질 수 있고, 당장 돈을 갚을 수 없는 시행사를 대신해 건설사가 채무를 떠안게 되는 최악의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각 건설사가 위험에 대비해 어느 정도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건설사가 보증한 ABCP를 비롯해 PF 유동화증권 발행 잔액 가운데 이달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은 5조183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달에는 2조7593억원 규모의 건설사 신용보강에 의한 유동화증권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다.
 
만약 만기가 도래하는 ABCP 등 PF 유동화증권이 차환되지 못할 경우 시행사에 대한 대출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이는 지금보증을 해준 건설사에게 부담이 넘어오게 된다. 특히 현재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채권시장이 차갑게 식은 만큼 만기 채권을 갚기 위한 차환이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건설사)가 부담을 떠안게 될 공산이 크다. 지자체가 보증한 상품도 지급불능인 상황에서 민간 기업인 건설사가 보증한 ABCP가 신뢰도를 얻기는 쉽지 않다.
 
이미 ABCP 뿐 아니라 전반적인 채권시장에서 '위기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은 PF 대출채권 자산을 기초로 발행한 약 7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의 만기일을 앞두고 새 어음을 발행해 상환할 계획이었지만, 투자자를 모으지 못했다. '강남 4구'인 강동구에 대규모 단지가 조성되는 사업인 만큼 수요자들의 관심이 큰 곳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000720)·HDC현대산업개발(294870)·대우건설(047040)·롯데건설 등이 자체 자금으로 상환할 예정이었지만, 만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가까스로 차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존 발행 금리(연 3.55~4.47%)의 3배 수준인 최대 11.79%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불황 앞두고 중요해진 '현금'
 
이 때문에 건설사들의 '현금 여력'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대형건설사의 경우 대체로 두둑한 현금 곳간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위험 노출도가 떨어진다. 올해 6월 말 기준 현대건설의 경우 3조965억원 규모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GS건설(006360)과 삼성물산은 각각 2조7345억원, 2조873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다. DL이앤씨(375500)는 1조8612억원, 대우건설은 1조1222억원, SK에코플랜트 1조128억원 등 '조 단위'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9765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다.
 
그러나 '10대 건설사'임에도 현금 여력이 다소 부족한 건설사들도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6280억원, 포스코건설은 5563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유상증자와 그룹 계열사의 자금 수혈 등을 통해 1조원의 현금을 마련한 롯데건설의 경우 올해 6월 말 595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사진=한국신용평가)
 
특히 롯데건설은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신용연계 유동화증권의 규모가 4조957억원에 달한다. 다만,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섰고 그룹 내 계열사의 추가적인 지원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롯데건설은 올해 9월 말 별도기준 약 70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이번 유상증자 및 단기 차입, 추가적인 은행권 자금조달 추진 등으로 원활하게 유동성을 확보할 경우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PF ABCP 등 3조1000억원에 대한 대응은 가능한 상황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건설사 명암 갈린다…중소 건설사들 "나 떨고있니"
 
이처럼 어느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룹에 속해 계열사 등의 지원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건설사의 경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보유한 현금 규모가 작아 재무완충력이 부족하거나 그룹에 속해 있지 않아 지원 가능성이 없는 중소 규모의 건설사다.
 
중견건설사의 경우 보유한 현금이 대형사 대비 크게 적은 수준이다. 아이에스동서(010780)는 2641억원, 한양은 1503억원의 현금을 보유하는 데 그쳤다. 코오롱글로벌(003070)은 1274억원, 동부건설(005960)은 716억원의 현금만 갖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들은 내년 상반기 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의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아이에스동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1200억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며, 한양은 1150억원 규모가 만기 도래 예정이다. 코오롱글로벌은 800억원, 동부건설은 750억원 규모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부담해야 한다.
 
당장 회사채 규모만 보면 동부건설을 제외하고 대부분 보유 현금보다는 적은 규모지만, 우발채무로 번질 수 있는 PF 보증 규모 또한 주목해야 한다. 코오롱글로벌 3808억원 , 아이에스동서 2530억원 , 한양 1493억원 , 동부건설 1300억원 등이 PF 보증으로 인한 우발채무로 잡혀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어렵지만, 내년에 건설업계 전반에 큰 위기가 올 것"이라며 "추가 금리인상 등이 사실상 확정적인 상황에서 부동산 침체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고, 자체 보유한 현금에 따라 건설사들의 명암도 갈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향후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인 시나리오로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 상황의 변화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고, 정부의 지원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10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5조원 규모의 미분양주택 PF 대출 보증 상품을 신설하기로 했다. 현재는 준공 전 미분양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증 상품이 없어 건설사들 자금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에 건설사별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현시점에 위기를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라며 "정부의 지원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점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노제욱 기자 jewookis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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