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화학3사 합치는 애경그룹…속내는 총수 위한 청사진?
합병 대상 화학 3사, 최근 매출 모두 내리막···유동성 우려도
합병 후 AK홀딩스 지분 66% 넘어···내년엔 사익편취 감시 대상
공개 2021-08-13 09:30:00
이 기사는 2021년 08월 11일 10:08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애경그룹의 화학 계열사 애경유화(161000)와 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의 합병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애경그룹 측은 합병을 통해 화학 부문을 강화하고 중요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번 합병이 총수 일가 지분 강화와 계열사 지원을 위한 속내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병 예정인 3사의 실적이 모두 좋지 않은 데다, 합병 이후 유동성 역시 불안하기 때문이다.
 
애경그룹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애경유화·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 등 3사의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애경유화이며, 합병 기일은 오는 11월1일이다. 주식교환비율은 애경유화·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이 각각 1:0.68:18.26이다. 애경화학 0.05주·에이케이켐텍 1.47주애경유화 신주 1주가 배정된다. 
 
 
 
합병법인은 연 매출 1조7000억원 규모로, 2030년까지 매출액 4조원·영업이익 3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애경그룹의 계획이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 화학사업 인프라와 노하우 등을 집중시켜 화학사업의 퀀텀 점프를 통해 통합법인을 ‘글로벌 리딩 케미칼 컴퍼니’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경그룹의 이 같은 목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합병 예정인 애경그룹 화학 3사의 최근 실적이 모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존속법인인 애경유화는 1970년 창립한 애경그룹의 대표 화학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애경유화는 지난해 908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도에 비해 10.63% 줄어든 수준이었다. 영업이익은 574억원으로 같은 기간 22.6%가량 늘었지만, 증권업계 추정치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었다. 당기순이익 역시 45.72% 증가했음에도 증권가 예상치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주요 생산품목 중 무수프탈산(PA)·가소제(DOP, DINP 등)의 경우 공급 능력 기준 국내 1위·세계 4위이긴 하지만 유가 등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는 바이오연료와 2차전지용 음극 소재는 매출 비중이 작아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에이케이켐텍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업정보플랫폼 딥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이후 매출액은 계속해서 줄고 있고, 지난해 기준으로는 전년도보다 약 11.8% 감소한 2439억2500만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늘긴 했지만, 경쟁 심화와 소비자 사이에서 확대되고 있는 계면활성제 등 화학 물질에 대한 기피 기조로 전망이 좋지만은 않다. 
 
에이케이켐텍 역시 공시를 통해 “계면활성제는 다양한 산업군에 쓰이는 제품이나 성장률 정체·경쟁업체 증가·규제강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화학물질과 관련한 '소비자의 신뢰 하락'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유동성 문제도 있다. 에이케이켐텍의 작년 말 기준 1년 이하 단기차입금은 657억9900만원으로, 161억1700만원 수준인 현금·현금성자산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애경화학의 실적은 더욱 좋지 않다. 지난 2018년부터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해 작년에는 11년만에 매출 2000억원 선이 깨졌다. 영업이익도 161억7200만원으로 전년도보다 30%가량 떨어졌고, 당기순이익도 102억4400만원 수준으로 같은 기간 38% 이상 쪼그라들었다. 부채비율도 2018년 28%에서 작년에는 140%까지 급등했다. 비율은 아직 안전한 수준이지만, 급격한 증가세가 문제다. 
 
실적 회복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애경화학의 주력 품목은 수지와 경화제·점/접착제 등이어서 건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대로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8월 경제 동향을 통해 “건설업체가 실제 시공한 실적인 ‘건설기성(불변)’은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했고, 같은 기간 건설 경기의 대표적 선행지표인 ‘건설수주(경상)’도 -18.7%를 기록해 감소세로 전환됐다”라고 분석했다.
 
3사 합병 이후 유동성 역시 예상 현금·현금성자산이 636억3400만원 수준인 데에 비해 단기차입금은 두 배 이상인 1477억9100만원 규모로, 안전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애경유화 측은 이에 대해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비용을 절감해 회사의 재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애경유화가 보유한 각종 네트워크와 대외적 인지도를 활용해 자금 조달 역량 역시 강화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3사의 사업 분야가 다르고 실적도 좋지 않다는 점은 합병 시너지와 합병 후 실적 목표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에 일부 업계 관계자와 주주들은 애경그룹이 화학 3사를 합병하려는 이유가 총수 일가의 지분율 확대와 계열사 지원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합병 예정인 화학 3사의 최대주주는 애경그룹지주회사인 AK홀딩스(006840)로, △애경유화 지분 49% △에이케이켐텍 지분 81% △애경화학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3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존속회사인 애경유화에 대한 AK홀딩스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보통주 기준 49.45%에서 66.31%로 16.86%포인트 증가하게 된다. 총수 일가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더욱 커진다는 의미다. 
 
내년 시행되는 공정경제 3법에 따라, 합병 후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도 우려된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제47조)’법 개정에 따라 2022년부터 총수 일가가 20% 이상 보유한 국내 계열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가 단독으로 50% 초과 보유한 국내 계열회사는 사익편취 규제 감시 대상이 된다.
 
애경그룹의 경우 지주회사 AK홀딩스에 대한 총수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64.91%에 달하기 때문에 합병 후 AK홀딩스가 66.31%의 지분을 갖게 되는 애경유화 역시 사익편취 규제 감시 대상이 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사실 애경그룹의 경우 지금도 에이텍·애경피앤티·에이케이아이에스·AK홀딩스 등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합병 예정인 에이케이켐텍 역시 내부거래 비중 12%로 내년 규제 대상 편입이 예상됐었다.
 
계열사 제주항공에 대한 지원 문제도 합병 이슈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달 에이케이켐텍과 애경화학은 제주항공의 유상증자를 지원하기 위해 각각 보통주 1주에 1070원·2만5830원을 지급하는 중간배당을 결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열지원을 위해 배당을 감행한 것을 보면, 합병 후에도 계열지원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학계 관계자는 “향후 사업 추이를 보아야 알겠지만, 1~2년 이내에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가 나오지 않거나 계열사 부당 지원·사익 편취 등 문제가 불거질 경우 합병의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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