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웃바람…'최악 지배구조' 동진쎄미켐 어쩌나
국민연금, 동진쎄미켐 지분 5% 이상 보유…거버넌스 등급 최하
공개 2020-01-08 09:10:00
이 기사는 2020년 01월 06일 08: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국민연금이 ESG평가 등을 참고해 적극적 주주활동을 펼치겠다는 지침을 의결하면서, 지배구조 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동진쎄미켐에 때 아닌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승계작업 진행 중인 동진쎄미켐으로서는 특히나 불편한 상황에 놓인 형국이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최근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스튜어드십코드(SC) 도입 18개월 만에 관련 지침이 마련된 셈이다.
 
의결된 가이드라인에는 적극적 주주활동 대상 선정기준으로 ESG이슈 발생 및 정기 ESG평가결과 하락이 포함됐다. 즉, 기업의 환경(E)·사회(S)·지배구조(G) 관련 문제가 발생해 기업가치가 급락됐다고 판단될 경우, 제반절차를 통해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한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코스닥 상장사는 43개다. 국민연금은 해당 기업의 ESG를 자체 평가하지만 운용지침에 따라 등급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대신 간접적으로 ESG등급을 살펴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가이드라인에 ESG 평가 수행기관의 분석보고서를 참고한다고 명시했는데,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해부터 코스닥100지수(현재는 150)에 편입된 기업의 ESG등급을 발표해왔다.
 
KCGS 발표와 공시를 종합했을 때,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 중 지배구조(G)에서 C이하 등급을 받은 코스닥 기업은 총 2곳이다. 그 중 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감광제)’를 생산하는 동진쎄미켐(005290)은 지배구조(G)에서 최하인 D등급을 받았다. 그 여파로 ESG통합등급도 C를 받았다. 국민연금은 동진쎄미켐 지분을 5.08% 갖고 있다.
 
동진쎄미켐 시화공장 입구 전경. 사진/동진쎄미켐 홍보영상
 
KCGS는 D등급을 ‘지배구조 등 모범규준이 제시한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거의 갖추지 못해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등급은 직전연도 사업보고서 등을 토대로 진행하는 기본평가와 내부 시스템 및 공정위·금융위 징계 등의 여부를 반영하는 심화평가를 종합해 책정되며, 그중 지배구조는 이사회 독립성, 감사기구, 주주권리보호 등의 항목이 핵심적으로 고려된다.
 
일반적으로 ESG 등급은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높게 평정될 가능성이 있다. 가용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동진쎄미켐이 연결기준 매출·자산 8000억대를 기록하며 순현금을 창출해 현금성자산을 1000억원 이상 쌓아두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낮은 지배구조 등급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자료: 금감원 전자공시·한국기업평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B+가 양호등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D등급은 투자에 부적절하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라며 “일반적으로 D등급이라면 기업 사이즈에 상관없이 지배구조 기본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그와 더불어 경영진 위법행위 및 과징금 여부 등이 반영되는 심화평가에서도 추가 감점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동진쎄미켐은 사외이사·감사의 독립성이 다소 떨어지는 모양새다. 동진쎄미켐 사외이사는 현재 1인 체제로 구성됐으며, 이화영 대한환경안전협의회 회장이 근 20년 연속 재직하고 있다. 동진쎄미켐 이부섭 회장과 이화영 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동문이다. 사내이사는 이부섭 회장과 그의 장남인 이준규 부회장, 차남 이준혁 부회장이 10년 가까이 맡고 있다. 물론 이사회를 견제할 내부위원회도 없다.
 
감사위원회도 전무하다. 상근감사 1인으로 운영되며, 이마저도 김완정 전 한국산업은행 부총재가 15년째 맡고 있다. 상법은 감사위원회 대표 요건 중 하나로 사외이사를 명시하고 있는데, 동진쎄미켐은 이 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동진쎄미켐은 소수주주 보호장치인 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등도 채택하고 있지 않다.
 
동진쎄미켐 포토레지스트 생산설비. 사진/동진쎄미켐 홍보영상
 
물론 이 같은 평가가 동진쎄미켐 지배구조에 당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관련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최악의 경우 국민연금이 '적극적 경영참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임기가 길어지면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독립성 저해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라며 “지배구조 등 ESG가 건실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어쨌든 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같은 리스크는 동진쎄미켐 입장에서 '발바닥에 박힌 가시'가 될 수도 있다. 수년 전부터 물밑 승계작업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동진쎄미켐은 올해로 84세가 된 창업주 이부섭 회장과 그의 차남 이준혁 부회장의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분상 실질 지배자는 이부섭 회장이다. 동진쎄미켐 최대주주는 지주사 동진홀딩스인데, 동진홀딩스 최대주주가 바로 이 회장이기 때문이다.
 
본래 이 회장은 2013년 10월경 동진쎄미켐 보유지분 약 10%를 차남 이 부회장에게 증여하려고 했다가 증여세 부담 등에 이를 취소하고 대신 지주사를 설립하며 지분 25%를 현물출자했다.
 
이후 이 회장은 동진쎄미켐 지분을 서서히 매각하며, 동시에 동진홀딩스 실질 지분을 신주인수권부(BW) 행사 등으로 희석시켰다. 그 결과 이부섭 회장의 동진홀딩스 지분은 약 79%에서 현재 55.72%로 낮아졌고, 대신 차남 이준혁 부회장 지분과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연 매출 8억원 규모의 회사 ‘미세테크’의 합계 지분율이 29.36%로 증가했다.
 
동진쎄미켐 관계자는 “평가받은 ESG등급을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사외이사 감사님들이 오래 하신 측면이 있으니 그런 점에서 안 좋게 보일 수는 있겠다”라며 “그러나 지배구조상 문제는 없으며 회사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외이사·감사를 변경할 이슈도 없었고 현행법상 문제 되지도 않았으므로 계속 연임을 하셨던 것 같다”라며 “어차피 사외이사 임기제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교체를 해야 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