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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하는 韓 녹색채권 발행…풀어야 할 숙제 산더미
"기관투자자 매수주문 증가로 조달금리 낮출 수 있어"
"활성화 위한 정부 지원 필요… 싱가폴·홍콩 선례 있어"
공개 2019-09-2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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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19년 09월 18일 14:22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친환경 사업 확대 및 글로벌 투자 트렌드 영향 등으로 국내 녹색채권(Green Bond) 발행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발행절차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만, 대신 더 많은 글로벌 투자자를 확보해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내 녹색채권 발행이 확대되려면 제도적 기반 마련 및 정부 지원 등이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8일 산업은행 산하기관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한국 기관의 녹색채권 발행 규모는 직전연도(2018년) 총액 대비 80% 증가한 36억99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녹색채권 발행액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국내 녹색채권 발행에 탄력이 붙고 있는 셈이다. 민간 발행 비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녹색채권 발행총액의 23.3%가 민간기관에서 비롯됐지만, 올해는 63.2%로 크게 늘었다.
 
업종별 비중도 달라졌다. 지난해 국내 발행총액의 43.7%가 발전 등 공공사업군에서, 41.6%가 금융업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올해는 제조업 비중이 42.3%로 크게 늘었다.
  
LG화학(051910)이 올해 4월 초 전 세계 화학기업 중 최초로 15억6000만불 규모의 유로표시, 달러표시 녹색채권을 발행했고, 해당 내용이 통계에 적용된 덕분이다.
 
국내 녹색채권의 총 발행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지 않다 보니 일부 기업의 발행이 관련 비중을 크게 좌우하는 모양새는 있지만, 녹색채권 발행 추세가 공공에서 민간으로, 그리고 발전, 금융업에서 제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시그널로 읽을 수 있다.
 
녹색채권은 조달자금을 신재생에너지 사업, 환경오염 예방, 친환경 교통수단 투자 확대 등 환경친화적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확약을 하며 발행하는 채권이다.
 
확약은 자율적으로 이뤄지며, 발행 희망자는 국제적 신뢰도를 획득하기 위해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등 민간단체로부터 자금 지출 계획 등을 공인받아야 한다.
 
인증을 위해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고, 제반 수수료도 지급해야 한다. 발행 후에는 이행상황 등도 매년 공시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아도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지만, 대신 시장에서의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
국내기관 그린본드 발행 추이. 출처/KDB미래전략연구소
 
녹색채권 발행 랠리, 대체 왜?
 
국내 녹색채권 발행 확대 근본 원인은 자동차, 석유화학업계의 친환경 투자 확장에 있다. '녹색' 이전에 기업 자금조달 핵심인 '채권'이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생산, 보급 확장에 힘쓰고 있으며, 석유화학업계는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제조에 주력하고 있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현재 친환경 차량 비중은 전체의 3%가 채 못 되지만, 오는 2040년에는 33% 이상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가적인 원인으로는 '녹색' 기조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세계 흐름을 꼽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오는 2021년 본격 시작되는 파리기후협약을 앞두고 친환경 관련 사업을 정책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파리협약이 발효되면 세계 195개 국가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분을 2℃ 이하로 유지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이에 대한 국가결정기여(NDC)를 의무 제출해야 한다.
 
감축 목표는 자율적 설정 가능하지만, 제출 의무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이는 친환경 관련 사업 투자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유사한 맥락에서 정책변동 등에 대한 리스크도 일부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친환경 사업을 주목하는 이유다.
 
세계 그린본드 발행액 추이. 출처/국제금융센터
 
간접적 이득도 있다. 유럽의 경우 친환경 투자 무드가 일찌감치 조성됐고, 그 영향으로 녹색채권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다.
 
투자자가 많아지면 주문량이 늘어나고, 이는 곧 금리 하락의 동인이 된다. 발행자 입장에서는 보다 적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셈이다. LG화학이 발행한 녹색채권의 매수 주문량은 한국채권 중 역대 최대 수준인 105억불(59억달러, 41억유로)을 기록했고, 이에 조달금리는 최초 제시 밴드 대비 27.5~35bps 낮아졌다.
 
LG화학은 "그린본드 발행을 통해 일반채권 대비 경쟁력 있는 금리로 외화를 조달할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세계 투자은행(IB) 업계에 부는 스튜어드십코드(SC) 바람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SC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제반 투자를 독려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녹색채권 발행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사회적 문제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들고, 동시에 지배구조 개선으로 자산 비효율성 등이 억제되면 곧 장기 수익률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발행자 입장에서 녹색채권에 대한 직접적 장점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라며 "다만, 각국의 정책적 뒷받침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따른 세계 투자자들의 니즈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므로 과거 대비 투자 규모가 늘어나 금리 인하 등 간접적 장점을 기대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도 "해외의 경우 녹색채권 등 ESG에만 전문 투자하는 기관이 있을 만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녹색채권 발행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현재 녹색채권 등 ESG채권 비중은 세계 채권 발행액의 약 5%를 차지하고 있으며 증가세는 가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녹색채권 발행에 필요한 인증수수료가 그리 비싼 것도 아니고 관련 절차가 크게 복잡하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LG화학의 중국 남경 배터리 공장 전경. LG화학은 지난 4월 화학기업 세계 최초로 녹색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사진/LG화학
 
세계 유수 투자 기관도 녹색채권 관련 인덱스를 만들고 있다. 이는 각국 펀드 등 금융상품의 기초가 된다.
 
대표적 인덱스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과 바클레이은행 등이 만든 'The Bloomberg Barclay MSCI Global Green Bond Index'가 있다. ESG로 범위를 넓히면 그 종류는 더욱 많아진다. JP모건과 블랙록이 공동 개발한 'JP MORGAN ESG INDEX' 지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친환경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녹색채권 발행 확대를 뒷받침한다.
 
녹색채권 발행 이력이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일반 기업이 쉽게 투자하기 어려운 친환경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서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효과가 있으며, 이 같은 내용을 글로벌 고객사 등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살랑살랑 바람 이는 원화 표시 녹색채권 발행시장
 
달러표시 녹색채권 발행이 확대되면서, 원화표시 녹색채권 발행도 미미하지만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 민간 기업의 원화 표시 녹색채권 발행액은 직전연도 총액 대비 6400억원 늘어난 8400억원으로 파악된다. 현대캐피탈이 4월 말 3000억원, 현대카드가 8월 초 2400억원을 발행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 완전자회사인 SK에너지도 오는 18일 3000억원의 원화표시 녹색채권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다.
 
국내 원화표시 녹색채권은 지난해 4월 산업은행이 3000억원 규모로 최초 발행한 바 있다.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가 녹색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은 계열사인 현대차(005380), 기아차(000270)의 전기·하이브리드 차량 할부금융 서비스에 투입된다.
 
여의도에 있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본사. 사진/뉴스토마토DB
 
SK에너지 조달액은 울산CLX 내 건설 중인 감압 잔사유 탈황시설(VRDS) 구축에 투입될 예정이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오는 2020년부터 선박연료유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춰야 할 것을 의무화했고, 이로 인한 저유황유 수요 확대에 대응하려는 목적이다.
 
이대원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금융기관도 원화 녹색채권을 발행하고 비금융기관 녹색채권에 보증을 제공하는 등 시장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ESG펀드 증가 등 관련 자본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국내의 경우 환경(E)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대신 사회(S)나 지배구조(G)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만큼 간접적인 기대를 할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ESG 지표가 핵심이 되는 국내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설정액은 지난 11일 기준 약 566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설정액은 전년 대비 약 184억원 증가했다.
 
금융위원회의 '5% 룰' 개정 예고에 따른 스튜어드십코드(SC) 도입 확대로 원화표시 녹색채권 발행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5%룰' 개정은 기관투자자의 SC 참여를 늘리기 위해 주주활동의 경영참여-비경영참여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SC 적극 도입이 원화표시 녹색채권 발행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라며 "다만, 발행 규모 자체가 워낙 작으므로 당장 가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녹색채권 발행 확대를 위한 숙제는?
 
업계는 국내 녹색채권 발행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시장 형성 초기 단계이므로, 일단은 유통되는 물량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이 발행하는 유로, 달러 표시 녹색채권은 당연히 해외 주문량이 많으며 국내 기관 주문량은 5%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시중 유통물량도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일단 녹색채권은커녕 ESG채권 인덱스도 전무한 상황이다. 인덱스가 있으면 ESG 상품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안유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해외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벤치마크로 활용 가능한 ESG채권 인덱스가 개발된다면 국내 채권 투자자들도 보다 원활한 책임투자를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국내 인덱스 개발은 한국거래소 등이 사실상 독과점 하고 있지만, 거래소 측은 ESG채권 인덱스 개발이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녹색채권은 물론 ESG채권 인덱스 개발을 검토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ESG채권이 많이 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국공채 이외의 채권은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유통시장이 형성되는 걸 보면서 검토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거래소가 현재 인덱스 개발 등을 증권사 등 민간기업에게도 허용하기 위한 제반 연구용역을 실시 중이라, 거래소 결정에 따라 향후 ESG채권 관련 인덱스 개발이 가속화될 가능성은 있다.
 
여의도에 있는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뉴스토마토DB
 
녹색금융의 보다 빠른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금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홍콩은 정해진 금액 내에서 녹색채권 발행기관에 발행비용 100%를 지원하는 제도를 펼치고 있다.
 
오덕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민간기업의 녹색채권 발행을 단순히 기업의 일상적 활동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한다"라며 "기업에게 세제지원 또는 비용 지원 등의 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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