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상장사들이 매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뒤 함께 공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관련사항'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성과뿐 아니라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잠재적 리스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투자 정보가 담겨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앞으로 재무제표 못지않게 투자자가 반드시 살펴봐야 할 공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사진=현대글로비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086280),
SK디앤디(210980),
LX세미콘(108320),
한국타이어앤(161390)테크놀로지 등 다수 상장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자율 공시를 공개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분야에서 어떤 위험을 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전략을 추진할 것인지를 담는 비재무 공시다. 과거 실적을 정리하는 사업보고서와 달리 미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설명하는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보고서에는 탄소배출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기후변화 대응 전략, 재생에너지 사용 계획 등 환경 분야는 물론 산업안전과 인권경영, 협력사 관리, 고객 보호, 인재 육성 등 사회 분야의 내용이 포함된다. 여기에 이사회 운영과 독립성, 윤리경영, 내부통제, 준법경영 체계 등 지배구조 관련 내용도 함께 공개된다.
30일 공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에 관한 자율 공시 중 일부(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국내에서는 아직 통일된 작성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SASB(지속가능회계기준),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UN SDGs 등 다양한 글로벌 기준을 적용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기업마다 산업 특성과 사업 구조에 따라 여러 기준을 함께 적용하는 사례도 일반적이다.
특히 투자자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ESG 정보가 더 이상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이 아니라 재무성과와 직결되는 경영 요소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 규제 강화와 공급망 관리, 인권 규제, 산업재해, 이사회 독립성 등은 향후 기업의 비용 증가와 영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현재 실적뿐 아니라 앞으로 기업이 어떤 위험을 관리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실제로 글로벌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과정에서 ESG 공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지속가능성 공시 수준이 낮거나 기후 리스크 관리가 부족한 기업에 대해 투자 비중을 줄이거나 추가적인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하는 기업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자율공시임에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는 이유는 투자자와 금융기관, 해외 거래처가 ESG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이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기업일수록 ESG 공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인 6~7월에 공시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원칙적으로 재무제표와 함께 3월 말 동시 공시하는 방안을 권고한 상태다. 또한 향후 제3자 인증 체계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인 만큼 기업들은 공시 작성뿐 아니라 내부 데이터 관리와 검증 체계까지 갖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또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해서 ESG 경쟁력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투자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하는 부분은 이른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친환경 목표나 탄소중립 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실제 투자나 감축 성과는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면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고 있는지, 친환경 설비 투자를 약속했다면 투자 규모와 진행 현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는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공급망 인권관리나 산업안전 강화 역시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 사고 감소와 관리 체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보고서의 일관성이다. 매년 동일한 지표를 공개하면서 목표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기업일수록 정보의 신뢰도가 높다. 반대로 핵심 지표를 매년 변경하거나 불리한 내용은 제외하고 긍정적인 내용만 강조하는 경우에는 투자 판단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결국 투자자 역시 보고서 제출 여부만 확인하기보다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분야의 실제 성과가 개선되고 있는지, 공시한 목표가 이후 꾸준히 이행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초안을 발표하고 오는 2028년부터 연결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후 2029년에는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향후 국제 동향과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적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3(Scope3)는 공시 의무를 3년 유예해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시 대상 기업들이 배출량을 산정하기 위해 협력사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만큼 실제 공급망 관리와 데이터 구축은 그 이전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업체들도 온실가스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공시 방식도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우선 한국거래소 공시 규정에 따른 거래소 공시로 운영한 뒤 제도가 안착하면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도입 초기에는 추정이나 예측 정보에 대해 일정 부분 면책을 인정하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원칙을 적용하고 계도 중심으로 운영할 계획이지만, 향후 법정공시로 전환될 경우 허위 또는 부실 공시에 대한 법적 책임도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