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계의 연말 인사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관세 압박과 수익성 둔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주요 그룹들은 발 빠른 조직 개편과 인재 재배치를 통해 위기 대응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과거 인사가 '성과 평가의 마무리'였다면, 올해는 '위기 대응의 출발점'으로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사업 리밸런싱·세대교체·리더십 전환'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안은 주요 그룹들의 인사 전략을 <IB토마토>가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10년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뒤 처음 맞는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이 예고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뉴 삼성’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인적 쇄신의 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미래전략실 이후 사라진 컨트롤타워 복원 논의와 함께 반도체·바이오 중심의 세대교체, 글로벌 시장 대응을 위한 조직 재편이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삼성전자)
미래전략실 부활 가능성…컨트롤타워 재건 움직임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올해 사장단 인사는 예년보다 앞당겨진 11월 중하순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12월 정기인사를 단행했으나 2023년 이후 2년 연속 11월 말에 실시한 이후 올해는 이보다 빨라진 10월 말에서 11월 중순으로 시기에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초 삼성그룹은 사장단 등 임원 인사를 시행한 후 글로벌 전략 회의를 통해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우는 기조를 유지했으나, 최근 미국의 관세 압박과 미·중 무역갈등,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등 대내외 변수가 발생하면서 조기 정기 인사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이후 처음 실시하는 정기 인사라는 점에서 ‘뉴 삼성’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앞서 그는 올해 초 60개 계열사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삼성다움 복원’ 가치 교육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변화에 나서야 한다”며 신상필벌 원칙에 따른 수시 인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국적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글로벌 수준의 특급 인재를 적극 발탁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이번 정기 인사에서도 관련 사업부의 조직개편 폭이 어느 정도일지가 변수다.
올해 시장의 관심 역시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2017년 해체된 미래전략실의 역할을 대신해온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그간 실질적으로 그룹 현안을 조율해왔으나, 복잡해진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그룹 경쟁력 강화를 위해 컨트롤타워 재건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내부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최근 삼성의 움직임은 사실상 컨트롤타워 복원의 전조로 볼 수 있다”며 “계열사 간 협업이 늘어나는 구조상, 투자·기술·인사 전략을 총괄할 조정기구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미국 텍사스 테일러·오스틴 반도체 공장,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 가전공장 등 현지 생산 거점을 확대하며 대미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정치적 리스크가 얽힌 상황에서, 각 부문 투자·협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삼성이 미국 내 반도체·배터리·AI 투자를 병행하는 만큼, 이재용 회장 중심의 그룹 차원 의사결정 구조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사업지원TF를 정식 조직화하거나 계열사별 전략본부를 묶는 방식의 조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삼성전자, 반도체·DX부문 주목…바이오·AI 이끌 40대 임원 등용 주목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반도체(DS)와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을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적자에서 벗어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하반기부터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경영진의 유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시스템LSI·파운드리 부문의 수익성이 여전히 부진해 일부 사업 구조조정과 임원진 개편이 동반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DX부문 역시 갤럭시S25 흥행과 수익성 회복으로 반등에 성공하면서 한숨돌린 상태지만 글로벌 기기 경쟁이 심화된 만큼 체질 개선이 불가피하다. 향후 사업부문 간 시너지를 강화하고 차세대 스마트기기·웨어러블 분야에서 연구개발(R&D) 중심 인사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성과를 보인 70년대, 80년대생 젊은 엔지니어 출신들이 대거 임원진에 이름을 올리면서 올해도 40대 연구리더의 승진 발탁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외에도 그룹의 주요 계열사의 인사 기조는 미래 성장 분야를 축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를 차세대 핵심 동력으로 삼으면서, 변화의 흐름이 삼성전자를 넘어 삼성SDI·
삼성전기(009150)·삼성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 전 계열사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부문을 분리하며 ‘순수 CDMO’ 기업으로 전환했다. 이에 맞춰 조직 개편에 따른 인력 재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지주 및 투자 관리 기능을 맡게 된 삼성에피스홀딩스 역시 사업 구조 변화에 맞춰 인력 재정비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삼성그룹 측은 <IB토마토>에 "인사 일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