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사모펀드(PEF)가 전방위적 압박 속에 딜 가뭄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의 2025년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이 지연되고, 정치권은 차입매수(LBO) 규제를 강화하며 견제에 나섰다.
CJ제일제당(097950) 바이오사업부,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000400) 등 대형 딜이 잇따라 좌절되면서 시장 신뢰도마저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PEF의 신뢰 회복 없이는 시장 정상화가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의 ‘침묵’…시장엔 싸늘한 경고음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통상 4월 공고 후 제안서 접수·심사·현장 실사·경쟁 PT를 거쳐 6~7월 중 3~4개 운용사를 선정하지만, 올해는 공고조차 없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은 매년 국내 사모펀드사에 출자하는 금액은 개별 운용사당 크게 1000억원에서 3500억원 정도다. 지난해에는 총 출자금액은 1조원에 달했고 8개사 경합 끝에 ▲MBK파트너스 ▲JKL파트너스 ▲프랙시스캐피탈 ▲프리미어파트너스가 최종 운영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올해부터 국민연금이 기존 기존 성과 중심의 정량평가에서 사모 위탁운용사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적용을 강화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사실상 MBK파트너스를 겨냥한 행보로 수익 창출 과정에서 적대적 M&A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에 대한 견제는 정치권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근 10년간 자산 규모 상위 22곳의 국내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의 인수합병 계약 142건 중 132건에서 차입인수(LBO)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9건은 차입 규모가 순자산의 절반을 넘었으며 100% 이상 차입한 인수계약도 11건에 달했다. 대부분 빚을 내서 기업을 사들인 셈이다.
신뢰도 하락이 불러온, 때 아닌 딜 가뭄
올해 초만 해도 인수·합병(M&A) 시장은 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사모펀드의 투자 수요 증가로 활황이 예상됐다. 실제 LG화학(051910) 워터솔루션부문 매각 협상이 가시화됐고 한온시스템 매각이 완료되는 등 시장 회복이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3월부터 이어진 시장 변동성 확대와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회생절차 신청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대기업 그룹사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에서 사모펀드의 매수가 잇따라 좌절돼, 시장의 신뢰도 하락을 가늠하게 한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 매각은 대표적 실패 사례다. 올해 초까지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는 국내 M&A시장에서 기대되는 빅딜 중 하나였다. 하지만 CJ제일제당과 매수 후보자인 MBK파트너스 사이 매각 가격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난달 최종적으로 매각이 철회됐다.
표면적으론 매각 가격 차이지만 일각에선 중국으로의 매각 가능성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중국 매각설을 부인했지만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가 주력으로 삼는 식품 조미 소재와 사료용 아미노산의 경우 CJ제일제당을 제외하면 중국기업이 시장의 나머지 파이를 상당수 차지하고 있어 현재로서 원매자가 중국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사모펀드 보유 기업도 매각이 난항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롯데카드, JC파트너스가 보유한 롯데손해보험의 경우 작년부터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현재로서는 금융지주 편입이 최선의 시나리오로 여겨진다. 하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한편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 매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에선 현재의 불확실성이 완화된 이후에야 딜 성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현재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더해져 매각과 매수 측 모두 쉽사리 딜에 응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연초엔 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예상됐지만, 현재로서는 매각과 매수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딜에 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모펀드와 기업 간의 신뢰도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각 주체가 충분히 투자 의지를 가질 수 있을 만한 환경 개선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평가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