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부정적인 특성을 비유하는 말 중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쉽게 달아오르고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처럼 특정한 이슈가 생겼을 때 큰일이 날 것처럼 흥분하고 관심을 집중시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쉽게 잊어버리는 태도를 빗댄 용어다. 일각에서는 이 단어가 한국인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서울시내 교촌치킨 매장 모습.(사진=뉴시스)
실제 한때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사건이나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들이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강하게 회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던 것도 사실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들이 온갖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을 통해 얼마 간 도배되는 듯하더니, 이내 다른 이슈로 우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 사건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유통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먹을거리 등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필수품을 다루는 업종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소비자들의 공분을 일으킨 기업들에 대해 불매운동만큼 강력한 처벌 방법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유통업계에서 시작된 소비자 불매운동은 한국인의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불리는 냄비론의 고질병을 피해 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불매운동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기업들이 무릎을 꿇는 경우도 있지만, 불매운동이 흐지부지되면서 결국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세가 기우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반복될수록 기업들은 더욱더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확산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최근 치킨업계에서 벌어진 불매운동을 지켜보면 이런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올해 초 BBQ치킨을 운영하는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2만원이 아닌 약 3만원 정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원가율을 방어하기 힘들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지난해 제너시스BBQ 원가율이 62.2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교촌치킨(
교촌에프앤비(339770))이 전격적으로 치킨 가격을 최대 3000원까지 올리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매운동이 크게 확산했다. 이는 즉시 교촌치킨 매출액에 반영되면서 올해 1분기 8.23%에 불과했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하락률이 2분기 22.93%까지 떨어졌다. 교촌치킨은 매장에 원부자재를 납품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불매운동으로 치킨 구매가 줄면서 원부자재 납품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에 교촌치킨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할인행사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할인행사 제품을 일정 제품으로 한정하고, 일정 가격 이상을 구매해야 할인을 해주는 조건을 내세우면서 소비자들을 더욱 우롱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할인을 받으려면 원하지 않는 제품을 일정 가격 이상 주문해야 된다. 이 때문에 교촌치킨에 대한 불매운동이 더욱 크게 확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3분기 들어 교촌치킨에 대한 불매운동 분위기는 차츰 사그라지는 모습이다. 올해 3분기 교촌치킨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0.99% 감소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매출액이 20% 넘게 쪼그라들었던 2분기보다 하락폭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더욱이 올해 2분기 매출보다 3분기 매출은 오히려 더 늘면서 불매운동 효과는 완전히 사라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는 사이 올해 3분기 교촌치킨 영업이익은 86억원을 기록하면 전년 동기(31억원)보다 177.41% 급증했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 규모는 줄었지만, 치킨 가격 인상 등으로 원부자재 납품 단가 상승 룸이 생기면서 수익성 개선을 한 방에 이룬 것이다. 한 마리를 팔아도 예전보다 더 많이 남겼다는 뜻이다. 교촌치킨은 당분간 판매가를 유지하면서, 매출 확대보다 수익성 개선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슈는 또 다른 이슈로 덮이는 게 순리다. 한국인의 특성이 ‘냄비근성’으로 폄하되는 것도 사실 너무 많은 이슈가 생겼다 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과거 한국을 알리는 영문 구호로 ‘다이내믹 코리아’가 선정됐을 때 정확한 표현이라고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업들이 오직 이윤 확대를 목적으로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기대하고 이용한다면 이제 우리들의 냄비는 뚝배기처럼 천천히 식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용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