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피플
김보훈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 회계사
국내 외환위기 시절부터 M&A 자문 맡은 1세대
해외 기업에서 보유한 매물 대기업에 소개해달라고 할 때 자부심 느껴
공개 2020-02-19 08:30:00
이 기사는 2020년 02월 14일 15:05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윤준영 기자] 인수·합병(M&A)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문학과 맞닿아있다. 김보훈 딜로이트안진 파트너가 틈이 날 때마다 역사, 철학, 물리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독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을 통해 협상을 이뤄가는 것, 인수합병 업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아이비토마토가 인터뷰한 김보훈 파트너는 국내 M&A시장의 태동부터 20년이 넘게 이 현장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인터뷰 내내 김 파트너는 지금껏 몸담아온 M&A현장의 역사를 특유의 담담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줬다. 
 
김보훈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 회계사. 출처/딜로이트
 
국내 M&A시장은 외환위기라는 한국 역사의 아픈 단면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부실기업으로 몰렸거나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대거 해외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M&A거래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김 파트너가 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된 바로 그 시점이다. 
 
하지만 2000년을 넘어 2010년대에 이르러 국내 M&A환경은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2018년 M&A거래금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원을 기록했고, 개별 딜의 인수규모가 2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대형 기업 M&A시장에서 외국계 투자은행(IB) 인수자가 핵심 플레이어였지만 이제는 국내 기업 및 사모펀드가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김 파트너는 재무자문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을 묻는 질문에 “글로벌 회사에서 보유한 매물을 국내 대기업에 소개해달라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우리나라 시장이 이만큼 발전했다는 점이 느껴져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국내 부실기업이 마구 쏟아질 무렵부터 M&A업무를 시작해 인수합병 시장이 활황을 맞은 현재까지 줄곧 현장에 몸담아온 김 파트너의 말에 자부심이 묻어나는 이유다. 
 
부침이 심한 M&A시장에서 꿋꿋이 한 우물을 판 김 파트너의 비결은 혹시 인문학을 통해 키워온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음은 김 파트너와의 일문일답이다. 
 
김보훈 딜로이트 안진 파트너 회계사. 출처/딜로이트
 
-국내 M&A 재무자문 1세대로 불린다. 
 
△1994년에 딜로이트안진에 처음 입사해서 1996년부터 M&A업무를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실사와 밸류에이션 등을 거쳐 현재는 안진 재무자문본부에서 딜 오리지네이션팀과 딜1그룹을 이끌고 있다. 
 
-처음 M&A업무를 시작한 시점과 비교해 현재 달라진 점을 느끼는가? 
 
△세 가지 키워드로 국내 M&A시장 변화를 조망해볼 수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 가업승계, 사모펀드가 그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성장단계에 이르면서 새로운 동력을 찾기 시작했고, 또 때마침 기업 오너들의 승계에 관한 고민도 시작됐다. 이제는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마인드도 옅어졌고, 각기 자녀들도 가업승계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충실한 경우도 많아서 자식이 있어도 물려주기 어려운 상황도 많다. 마지막으로 2010년 들어서면서 사모펀드가 늘어나 지금은 조 단위 운용자산(AUM)을 보유한 다수의 토종 사모펀드도 생겨날 정도로 자금 규모도 커졌다. 
 
-기업을 사고파는 주체인 국내 기업 오너들도 인수합병을 보는 시각이 변화했겠다. 
 
-M&A에 대한 시각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본다. 예전에 책을 보다 보면 과연 ‘기업이 사고파는 대상인가’라는 담론이 논의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M&A를 통해 기업가치가 상승한 사례를 든다면?
 
△두 가지 측면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기 위한 인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모색하기 위한 투자로 나눠볼 수 있다. SK(034730)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반도체라는 새 영역에 깃대를 꼽은 것이라면 NAVER(035420)가 한게임을 사들인 것은 자체 플랫폼에 한게임의 게임 사용자를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M&A 개별 딜의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는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업종과 시기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M&A 강의를 할 때 즐겨 인용하는 손자병법의 ‘도천지장법’이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보면 전쟁을 할 때 천(하늘)의 기운을 잘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천이라 함은, 전쟁할 때 날씨가 좋은지 궂은 지 등의 외부 환경요인에 해당한다. M&A도 마찬가지다. 환율은 어떤지, 산업적인 변화 방향성 및 글로벌 금융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잘 살펴야 한다. 이처럼 M&A 딜의 성패가 딜 당사자들이 제어하지 못하는 부분에 의해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M&A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실패한 딜로 판가름 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다고 본다.
 
-인수 자문과 매각 자문은 어떻게 다른가? 
 
△각기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다. 매각 자문을 할 때는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한 곳도 입찰을 안 하는 상황이 오면 말 그대로 ‘맨붕’에 빠진다. 반대로 인수 자문 시에는 경쟁자들이 입찰가격을 얼마나 써냈는지 유추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M&A 자문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적은? 
 
△개인적으로 인수 자문을 할 때 뿌듯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만큼 성장해서 해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는 점을 새삼 느낀다. 내가 처음으로 맡았던 딜이 1998년 이스라엘 기업 이스카에 매각됐던 대한중석 건이다. 그때는 우리 기업들이 M&A과정에서 참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글로벌 회사에서 국내 기업에 기업 매물을 소개해줄 수 있겠냐고 문의를 받는다. 2010년 전후로 상황이 빠르게 달라진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갖는 위치가 달라졌다. 어떻게 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모펀드의 존재는 필연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규모가 6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넘쳐나는 자금을 소진하기 위해서라도 사모펀드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보험사 등도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또 사모펀드가 경쟁력이 있다. 투자가 본업이고, 자금을 소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M&A 딜의 특성상 기업과 법무법인, 사모펀드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협업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일들을 조율할 수 있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예전과 달리 다들 전문가의 영역을 구축해둬서 협업 과정에서 별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한 가지만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쓸데없이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많은데,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역사나 철학, 물리학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시간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중력과 인터스텔라 등을 깊게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통, 전자상거래, 중공업 등 업종을 넘나들며 M&A 자문 업무를 수행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다. 
 
△먹고살려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일동 웃음) 새로운 분야를 할 때면 최대한 용어를 익히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바이오 업계를 맡으면 리보핵산(RNA), DNA, 변이 이런 단어를 공부하다가 유통 쪽으로 가면 아예 새로 공부해야 한다. 
 
-M&A업무에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었나?
 
△1994년에 회계법인에 입사한 뒤로 M&A 분야가 멋져 보여 (해당 분야에) 스스로 지원하게 됐다. 당시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었는데 초기에 해외 기업에 매각 자문을 제공하는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수의향서(LOI) 양식 하나만 제공하면 밥을 사주겠다는 동료들이 많았을 정도로 관련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서도 쉽게 M&A업무 관련 양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M&A 전문 회계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스킬이나 지식 등 기본기를 갖추면 좋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열정이다. 열정이 있어야 스스로 뭐라도 한 번 더 생각해본다. 그다음이 기획력이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가진 지식과 스킬을 활용할 수 있는 분석력이 중요하다. 
 
윤준영 기자 junyo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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