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자산보다 큰 레이 인수…상장 1년 만에 공모자금 2배 조달메자닌으로 잠재 신주 330만주…발행주식의 29.5%에 달해오버행 줄이려면 170억 필요…2년6개월 내에 실적 증명해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치과용 3D프린팅 소재업체
그래피(318060)가 대규모 메자닌 발행을 통해
레이(228670)를 인수했지만,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잠재 신주 규모가 현재 발행주식의 약 30%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CB의 35%에는 그래피 또는 그래피가 지정하는 제3자가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이 붙어 있어 실제 오버행 규모는 향후 행사 여부와 주체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그래피 홈페이지 캡처 (사진=그래피)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래피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레이 주식 408만7749주(26.14%)를 약 492억원에 양수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인수를 위해 그래피는 지난달 21일 483억원 규모 CB와 120억9979만원 규모의 전환우선주(CPS)를 발행해 총 604억원을 조달했다. 이 가운데 500억원을 타법인증권 취득자금으로 배정했다. CB에서 402억원, CPS에서 98억원이다. 나머지 약 104억원은 해외 영업망 확대와 마케팅, 원재료 구매 등 운영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기자본 2.7배 베팅…상장 1년 만에 공모자금 2배 조달
레이 인수 규모는 그래피의 재무 체력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다. 올해 1분기 말 별도 기준 그래피의 총자산은 345억원, 자기자본은 184억원이다. 492억원에 달하는 레이 지분 인수금액은 총자산의 약 1.4배, 자기자본의 약 2.7배에 해당한다.
특히 그래피는 지난해 8월 코스닥에 상장한 지 약 1년 만에 상장 공모 자금의 2배를 다시 조달했다. 당시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총 301억 1800만원이다. 그러나 올해 1분기까지 280억 9100만원을 집행해 IPO 자금의 약 93%를 이미 사용하면서 추가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그래피가 이처럼 자기 몸집을 웃도는 인수에 나선 배경에는 소재 기업의 한계를 깨고 글로벌 덴탈 플랫폼 생태계를 지배하겠다는 승부수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레이의 사업 모델은 치과용 CT나 스캐너 등 한 번 판매하면 추가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회성 장비 매출 중심이었지만, 그래피가 결합하면서 레이의 장비를 도입한 전 세계 치과들이 교정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그래피의 3D 프린팅 소재를 지속적으로 재구매해야 하는 구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그래피의 흑자 전환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 흑자 전환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잠정 실적으로 발표한 지난 2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64억 6700만원으로 전분기 33억 5300만원 대비 92.9%, 전년 동기 대비 47.7% 증가했다. 상반기 누적 매출 역시 98억21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7.6% 늘었다.
반면 잠정 2분기 영업손실은 29억 9900만원을 기록했고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도 61억 8800만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 영업손실 61억 5900만원과 비교하면 손실 규모가 사실상 그대로다. 매출 성장에도 비용 부담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당기순손실도 상반기 56억 98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7억 4600만원보다 적자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매출의 절반을 웃도는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메자닌으로 잠재 신주 330만주…발행주식의 29.5%에 달해
이번 레이 인수는 단순한 외형 확대를 넘어 그래피의 손익구조를 바꾸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다만 인수 이후 실적 개선 효과가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대규모 메자닌 발행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 부담을 함께 안고 가야 한다.
당장 부담은 CB와 CPS가 향후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오버행이다. 483억원 규모 CB의 최초 전환가액은 주당 1만8318원이다. 전액 전환될 경우 보통주 263만6750주가 새로 발행될 수 있다. CPS 발행에 따른 잠재 신주도 66만541주다. CB와 CPS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된다고 가정하면 잠재 신주는 총 329만7291주로, 현재 발행주식 대비 29.5%에 달한다. 전환 이후 전체 주식수에서 신규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계산해도 22.8%다.
이는 최대주주 심운섭 대표가 보유한 주식보다도 많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심 대표는 그래피 주식 312만8769주를 보유하고 있다. CB·CPS 발행에 따른 잠재 신주가 최대주주 보유물량을 약 17만주 웃도는 셈이다.
특히 주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 조정 조항이 없는 CB와 달리 CPS에는 리픽싱 조항도 붙어 있다. 하한은 최초 전환가의 80%인 1만4655원이다. 전환가가 최저 수준까지 낮아지면 CPS에서 나올 수 있는 보통주는 약 82만 6000주로 증가한다. 이 경우 CB를 포함한 전체 잠재 신주는 약 346만주로 늘어나 현재 발행주식의 31%까지 확대될 수 있다.
CB 35% 콜옵션…잠재 물량 축소 여부는 행사 주체가 관건
다만 483억원 규모 CB 전량이 그대로 주식으로 전환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번 CB에는 그래피 또는 그래피가 지정하는 제3자가 투자자로부터 CB 일부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콜옵션 한도는 CB의 35%다. 전체 발행액을 기준으로 하면 169억 500만원, 최초 전환가 기준 약 92만 3000주의 잠재 주식 물량에 해당한다. 그래피는 발행 1년 뒤부터 30개월이 되는 시점까지 3개월 단위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콜옵션 물량과 최대주주 지분율의 관계다. 현재 심운섭 대표가 보유한 주식 312만8769주를 기준으로 CB와 CPS가 모두 최초 전환가액에 따라 보통주로 전환된다고 단순 가정하면 심 대표의 지분율은 약 28.0%에서 21.6%까지 낮아진다.
반면 콜옵션 대상인 CB 35%를 심 대표 또는 특수관계인 등 최대주주 측이 전부 확보한 뒤 주식으로 전환한다고 가정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콜옵션에 해당하는 약 92만3000주가 최대주주 측 지분에 더해지면서 CB와 CPS가 모두 전환된 이후에도 지분율은 약 28.0%를 유지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콜옵션 한도가 메자닌 전환에 따른 최대주주의 지분 희석을 사실상 상쇄할 수 있는 규모인 셈이다.
콜옵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투자자는 35%에 해당하는 CB에 대해 전환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보유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마지막 매매대금 지급기일인 2029년 1월21일까지지만, 그래피 측이 마지막 콜옵션 행사기간인 2028년 11월21일까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의무보유는 사실상 종료된다.
문제는 콜옵션 행사에도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피가 35% 전량을 직접 되사고 전량 소각하기 위해선 약 170억원이 필요하다. 현재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콜옵션 행사가 가능한 기간, 향후 2년6개월 이내에 실적을 증명해야 오버행 숙제를 풀 수 있다.
그래피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이번 레이 인수를 통해 치과 산업 분야의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라며 "오버행에 따른 희석 문제는 향후 실적에 따라 주주 가치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고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