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막겠다던 CP, 적발 뒤 면피용 전락하나
잇단 담합에 CP 실효성 논란…'자율 운영' 한계
공정위, 기업별 운영·성과 통계 관리 공백
"CP는 건강검진"…관리자 독립성·결과 중심 평가 필요
공개 2026-05-06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4월 30일 15:49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이보현 기자] 최근 기업 담합 사건이 잇따르면서 도입 25년 가까이 된 기업 내부 준법경영 시스템 CP(Compliance Program, 공정거래 자율준수 제도)가 재조명되고 있다. CP는 담합 예방을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도입부터 운영, 평가까지 기업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한계가 지적된다. 또한 자율에 국한되다보니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CP 운영 현황이나 성과 통계를 점검하지 않고 있어 제도 관리 방식에도 허점이 따른다. 이에 CP가 실질적인 담합 예방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제도 운영과 평가 체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정배 대상 대표이사가 지난 1월 대상그룹 본사에서 열린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강화 선포식에서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상)
 
대규모 담합 적발 사후 CP 도입…배경 '주목'
 
30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대형 담합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CP는 관련 기업들의 대응책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01년 민간 주도로 도입된 CP는 기업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자율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도입하는 내부 준법경영 제도다. 예로 임직원 대상 공정거래 교육, 내부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위반 행위 사전 점검 및 신고 체계 운영 등이 있다.
 
CP 주요 목적 중에는 '담합 방지'도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담합 적발 후에 CP를 도입하는 양상이다. 특히 지난해말부터 올해까지 담합 이슈는 특정 품목을 넘어 원재료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돈육 담합에서는 총 9개 업체가 대형마트 납품 과정에서 입찰 가격을 사전에 조율한 혐의로 공정당국 제재를 받았다. 선진(136490), 도드람푸드, 디허스코리아, 대성실업, 대전충남양돈축산업협동조합, 부경양돈축산업협동조합, 보담, 팜스토리(027710), 해드림엘피씨 등이다. 이중 선진은 2023년 담합 적발 이후 2024년 CP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분당 담합 규모는 약 10조 1520억원으로 식품업계 역대 최대 수준이다. 대상(001680), CJ제일제당(097950), 사조CPK, 삼양사(145990) 등 주요 업체들은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약 8년간 전분당 가격과 인상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 업체는 가격 뿐 아니라 대형 수요처 입찰에서도 투찰 가격을 사전에 나누는 방식으로 조직적인 담합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밀가루와 설탕 담합 역시 유사한 구조로 진행됐다. CJ제일제당(097950), 삼양사, 대한제당(001790)은 관련 사건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중 삼양사는 담합 논란 직후인 지난해 11월 CP를 도입했다. 대상은 올해 초 2026년을 'CP 강화의 해'로 삼고 준법경영 체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설탕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은 미도입 상태며, 대한제당이 담합 논란 이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기업들이 담합 이후 CP를 도입하는 배경으로는 과징금 감경이 지목된다. 공정위는 매년 기업의 CP 운영 실적을 평가해 A·AA·AAA 등급을 부여하고 있는데, 우수기업에는 직권조사 면제 및 과징금 감경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24년 6월부터 시행된 개정안에 따라 CP 평가제도가 체계화되면서, AAA 등급 기업의 경우 과징금을 최대 20%까지 감경받을 수 있게 됐다.
 
손계준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이번 제당 3사 담합 사건에 대해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단순한 가격담합을 넘어 우리 기업 전반의 컴플라이언스 문화에 대한 경고"라며 "CP가 담합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적발될 때까지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라고 평가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지난 23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전분당 및 부산물 가격 담합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율제 한계 속 실효성 논란…"핵심은 제도가 아니라 작동 방식"
 
다만 CP는 의무가 아닌 자율 제도로, 도입 여부와 운영 수준이 오로지 기업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실제 본지 취재 결과 일부 기업은 CP 도입 및 강화 방침을 공개한 반면, 상당수 업체는 별도의 준법경영 체계나 운영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업계 전반의 대응이 균일하지 않았다.
 
이는 공정위 측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담합 이슈가 증가한 최근 2년 사이 CP 제도 평가를 요청하는 기업들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도입과 평가 모두 자율이다 보니 도입 이후 운영 상황은 확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부터 담합을 반복적으로 저지른 기업에 대해서는 CP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기업별 운영 사례가 제각각인 만큼 향후 운영 실태와 성과를 보다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통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CP 도입이 확산되는 현 시점에서 단순 제도 도입을 넘어 실질적인 운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제도의 실효성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CP제도 도입으로 담합 예방 효과는 물론 있다"며 "내부 관계자들이 실무를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담합이고 아닌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을 통해 이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CP는 건강검진과 같아 증상이 없더라도 점검하고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제도 도입 자체보다 실제로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핵심이며, 특히 자율제인 만큼 CEO 의지가 실효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계준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CP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 가치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실제 작동 여부에 달려 있다"며 "20여 년간 인센티브 부재와 형식주의를 거친 끝에 이제야 법적 토대를 갖춘 단계"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드러낸 구조적 한계로 최고경영진 관여형 담합에 대한 무력성, 형식 중심의 등급평가, 인센티브의 비대칭성을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경영진이 직접 관여하는 순간 CP의 보고·통제 체계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평가 역시 제도가 '있는지'에 치우쳐 있을 뿐 실제 위법 행위를 막았는지는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담합으로 얻는 이익에 비해 CP 인센티브가 지나치게 작아 실질적인 억제력이 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제도 개선 방향으로 경영진 책임과 CP의 연계, 자율준수관리자의 독립성 강화, 결과 중심 평가체계 전환을 제시했다. 그는 "CP를 두고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는데도 사고가 났으니 무용하다'는 주장과 같다"며 "핵심은 제도가 아니라 작동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기업의 진정성과 당국의 엄정한 평가가 맞물려야 제도의 신뢰를 지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보현 기자 bobo@etomato.com
 
제보하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