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는 로켓배송을 포기할 수 있나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논란 확산
SKT 등 이전 기업들과 다른 오만 행태
불편함 감수해야 바라는 정의 실현도
공개 2025-12-24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2월 24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용민 기자]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유통업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올해 SK텔레콤(017670), KT(030200)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럼에도 유독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인한 논란이 더욱 뜨거운 이유는 사고 이후 회사의 대응 때문일 것이다. 쿠팡은 개인 정보 유출 사고 한 달이 넘었음에도 보상 방안에 대해 여전히 검토 중에 있고,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여전히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쿠팡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실 이번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회사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크게 걱정할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 쿠팡은 현재 앱을 통해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고객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전화번호, 공동현관 출입번호)와 일부 주문 정보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카드 또는 계좌번호 등 결제 정보, 비밀번호 등 로그인 관련 정보, 개인통관부호 등은 유출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회사의 안일한 대응 때문이다. 김 의장은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에 글로벌 경영을 이유로 불출석하고 있다. 특히 사고 직후 박대준 대표이사가 사퇴하고, 해롤드 로저스 미국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가 임시 대표이사에 올랐다. 미국인이 한국 문화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또 이번 사태를 얼마나 잘 수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는 이전 국내 기업들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발 빠른 대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11일 오후 악성코드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인지한 후 같은 달 25일 발표문을 통해 유심카드 무료 교체 등 후속 조치를 발표했고, 이어 27일에는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후에도 피해가 발생한다면 100% 책임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사고 인지 후 한 달이 되지 않은 5월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 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SK텔레콤은 윤리적 기업이고, 쿠팡은 비윤리적 기업이라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이 달랐던 것일까. 그것보다 대체재의 유무가 기업들의 대응 방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통신사는 SK텔레콤 말고, KT와 LG유플러스(032640) 등 대형사에 알뜰폰 사업자까지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다. 서비스 품질도 거의 차이가 없다. 여기에 통신사를 이동하면 혜택까지 주는 곳들이 많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불안함을 느낀다면 얼마든지 통신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쿠팡은 어떤가. 우리가 과연 로켓배송과 무료 반품 등을 포기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필수품을 구매할 의지가 있을까. 어쩌면 쿠팡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오만한 태도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쿠팡을 버리고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김범석 의장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도 가볍게 무시하고, 통역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임시 대표를 바람막이로 세웠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과기정통부 제2차관을 팀장으로 ‘범부처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단순한 사고 조사에 그치지 않고, 기업 책임성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영업정지까지 거론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쿠팡의 불성실한 대응에 분노한 피해자들이 역대급 단체 소송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다고 실제 쿠팡에 대한 영업정지가 가능할지, 단체 소송이 승소할지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미 쿠팡의 독과점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편리함만 추구하는 우리 삶의 태도가 오늘의 쿠팡을 만든 것은 아닐까. 최근 '탈쿠팡'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9일 쿠팡의 일일 활성 사용자 수(DAU)는 두 달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흐름이 일시적 반응에 그칠지,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편리함을 누리면서 책임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쿠팡 사태는 기업의 오만함뿐 아니라 소비자인 우리의 선택 역시 함께 돌아보게 만든다.
 
최용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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