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정준우 기자]
영풍(000670)이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이후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려아연과의 거래 단절로 인해 급감한 현금 창출력을 보충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영풍은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대출 등 단일화된 자금 조달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영풍은 보유 자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자금 조달 전략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 석포제련소 무방류 설비 전경(사진=영풍)
경영권 분쟁 후 유동성 확보 총력
1일 금속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지난해 9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후 자금 조달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영풍의 보수적 재무전략이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올해 상반기 영풍은 처음으로 매출채권 유동화를 실시해 500억원을 장기차입금 명목으로 조달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없었던 당좌차월을 꺼내 들었고, 실질적 유동성 효과를 확보했다. 당좌차월은 거래 대금이 회사 보유 당좌예금 잔액보다 많아 거래 대금이 부족할 경우, 일정 한도까지 은행이 초과분을 대신 지급해 주는 제도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풍이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을 선택한 배경에는 고려아연과의 경영권 분쟁이 있다. 영풍은 아연 제련 부산물 등을 고려아연에 판매해 매출을 올렸는데, 경영권 분쟁 이후 두 회사간 거래가 사실상 단절됐다. 이에 영풍의 매출과 현금 창출력은 급감했다. 매출 공백이 발생한 까닭에 급히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영풍이 고려아연으로부터 얻은 매출은 48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707억원) 대비 90% 이상 축소됐다. 같은 시기 영풍의 전체 매출도 5599억원에서 3860억원으로 2000억원 가까이 줄었으며, 동시에 영업활동현금흐름 역시 126억원 유출에서 638억원 유출로 늘었다.
영풍은 설립 49년 차인 지난 1998년에 첫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보수적인 자금 조달 기조를 이어왔다.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은행 대출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이전인 지난해 6월 영풍의 차입금 구조를 살펴보면 모두 은행권 대출로만 구성돼 있다.
이에 매출 공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영풍의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채비율이 적정선 이하에서 유지되고 있어 외부 자금 조달을 늘려도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상반기 회사의 부채비율(부채총계 6188억원)은 36%에 불과했다. 경영권 분쟁 발생 이후 차입 규모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우수하다는 평가다. 올해 상반기 영풍의 부채비율(부채총계 8287억원) 역시 53.8%에 불과하다. 보통 제조업체 부채비율은 100~200% 수준이 적정하다고 평가된다.
탄탄한 재무체력…유동화 선택지 폭넓어
업계 안팎의 전망에 따르면 영풍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향후 오랫동안 분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바이아웃으로 고려아연 지분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렸지만, 집중투표제에 걸려 고배를 마셨다.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멤버 19명 중 영풍 측 멤버 수는 4명에 불과하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을 위해 장기간 도전을 이어갈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 과정서 영풍은 고려아연을 대체할 수 있는 매출원을 발굴해야 하는 임무가 생겼다. 새로운 매출원 물색 과정에서 제한된 현금 창출력은 불가피하며, 다변화된 자금 조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풍의 차입금 구조를 살펴보면 수출입, 임직원 복지 차원에서 발생한 주택자금 대출 등 만기 연장이 수월한 차입금 비중이 아직 높다. USANCE 등 수입 자금 대출은 수출 대금 입금 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대부분 수출 기업이 활용하는 차입금이다. 또한 임직원 복지 용도로 추정되는 주택자금 대출은 사택 건물 등 실물 자산이 담보로 제공돼 있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적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영풍은 지난해부터 현금 창출력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평가다. 유동성 조달 수단이 되는 실물 자산도 평가가치가 부채 총계를 뛰어넘는다. 아직 다양한 조달 방법을 통해 추가 외부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영풍이 유동성 확보 카드로 꺼낼 수 있는 자산은 설비 등 유형자산(1753억원), 투자 부동산(4559억원), 보유 단기금융상품(1064억원) 등이 있다. 이를 담보로 금융권 조달 등이 가능하다. 자산 유동화 등은 매출채권(677억원) 등을 통해 가능하다. 매각 가능성은 낮지만, 관계사 지분 등 투자 자산(8636억원)도 있다.
한편 영풍의 올해 상반기 배당금 수입(522억원)은 지난해 상반기(336억원)보다 더 늘었다. 고려아연으로부터 받는 배당금 증가, 영풍전자의 배당 재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이 영풍에 지급한 배당금은 올해 상반기 395억원이며, 영풍전자는 영풍에 배당금으로 100억원을 지급했다.
영풍 측은 투자 등 재무적 부담에 대응하기 위한 외부 자금 조달 가능성을 묻는 <IB토마토>의 질문에 “환경 투자는 향후 몇년간 꾸준히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금 소요 등은 회사의 재무 여력을 바탕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정준우 기자 jw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