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경고음)③위기 재현될까 노심초사…방파제 쌓는 은행
95조 지원계획 중 90조 은행 통해 집행
10월 한 달간 CP·ABCP 등 약 16조 매입…시장안정 지원
NPL 커버리지비율 200~300%…한시적 규제 완화 한숨 돌려
공개 2022-11-16 06:00:00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4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폭탄이 되어 돌아올 조짐이다. 지난 9월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자금경색이 최근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까지 이어지며 한국경제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불쏘시개가 되어 건설사에서 금융권까지 도미노식으로 잠재 위험을 키우는 분위기다. 특히 ABCP 몇 개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투자자들이 차환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2007년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과 유사해 ABCP가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올 뇌관이 되진 않을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ABCP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건설사 및 금융권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IB토마토 김수정 기자] #엔에이치자양유한회사(이하 ‘SPC’)는 1000억원 규모의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발행, 넥스트커넥트피에프브이에 대출을 실행했다. ABCP 발행 규모는 344억원으로, 한달 마다 만기가 도래한다. 만기 구조가 짧다보니 혹시 모를 차주의 신용 문제로 차환이 어려울 경우를 위험 요소로 꼽는다. 해당 ABCP는 오는 14일 19번째 차환 발행을 앞뒀다. 상환이 어려울 경우 NH농협은행이 유동화증권을 매입해 주기로 했다.
 
이처럼 은행이 매입하는 ABCP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당국이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유동성 문제의 '급한 불'을 은행이 꺼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차주의 채무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우량 신용도를 보유한 은행이 ABCP를 매입하고 부족 자금을 ABCP를 발행한 SPC에 대출해 주면서 안전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은행들도 당국의 요청에 일단 협조하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 10월 한 달간 5대 은행이 매입한 CP, ABCP, 전단채는 총 4조3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여기에 MMF와 특은채(특수은행채), 여전채(여신전문금융회사채권)까지 포함하면 총 약 17조원 규모의 매입 실적을 기록했다.
 
이달 당국은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불러 연말까지 총 95조원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가운데 72조8000억원은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배정됐다. 은행은 약속한 금액의 20%를 한 달 만에 지원한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서 금융지주 회장을 모으고, 자금 담당자들을 불러 지원을 당부하면서 은행들은 ABCP를 매입하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해 당국의 기조대로 움직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우량 회사 중심 PF 대출…유동성 지원 중책 맡은 은행
 
앞서 얘기한 95조원의 지원계획 중 약 90조원은 은행이 맡았다. 그나마 지원 여력이 되는 게 은행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이자 수익으로 3분기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데다,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PF 부실도 은행은 예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PF 익스포저는 약 1조원으로, 보수적으로 취급하다 보니 부실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은행의 PF 대출 잔액은 28조3000억원으로, 보험사(43.조3000억원) 다음으로 많은 PF 대출을 제공했다. 연체율이나 요주의여신 비율은 업권 중 가장 낮았다. 자기자본 대비 PF대출 익스포저 비율도 12.9%로, 저축은행(79.2%), 여신전문회사(84.4%)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았다. 저축은행이 대체로 투기등급이나 무등급 시공사에 대출을 제공하는 반면, 은행은 A급 이상의 우량 신용도 시공사에 대출을 제공한 것이 요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진 이후로는 PF 대출 문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부실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왔기 때문에 은행도 당국의 협조 요청에 응했다. 당국도 은행의 원활한 자금순환을 돕기 위해 규제 완화라는 '카드'를 꺼냈다.
 
지난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과 은행장들을 만나 "LCR 규제 정상화 유예조치, 예대율 규제완화 조치에 이어 증안펀드 출자금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도 코로나19 당시와 동일하게 하향 적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상공인 금융 지원을 위해 당국은 은행의 통합 LCR 규제 비율을 85%로 낮췄다. 이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면서 연말까지 92.5%까지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국은 정상화 시기를 6개월 미루기로 했다. 예대율 규제도 현행 100%에서 105%로 한시적으로 유연화하기로 했다. 또, 기존 증안펀드 출자금에 적용되는 위험가중치가 250%라면, 향후 100%로 하향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조만간 금감원이 각 은행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6개월 LCR 비율 정상화를 미뤘는데 기존에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발행해둔 은행채가 있다"라며 "예대율 규제도 완화해서 수신 금리 경쟁도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CR 규제 정상화 시기도 늦췄으니 여유가 되는 만큼 돈맥경화 해소에 은행이 적극 나서달라는 게 당국의 기조다. 
 
당국의 LCR 비율 권고치는 85%다. 상반기 기준 5대 은행이 보유한 고유동성자산을 감안해 시장에 풀 수 있는 유동성은 약 60조원으로 추산된다. 농협은행이 약 25조원으로, 당국의 요구에 가장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9월 말 기준 LCR 비율이 전 분기 보다 오른 것을 감안하면 여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은행 부도 위험 '급등'…충격 대비 방파제 튼튼하게
 
일시적 규제 완화로 한숨 돌렸지만, 조만간 코로나19 금융지원이 끝나면 한계차주가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은행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 중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도위험 지수가 급등하고 있는 것도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를 증명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국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평균은 75bp(1bp=0.01%포인트)로 집계되며 약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22bp)보다 3배 이상 뛴 것이다. 한국은행이 연달아 기준금리를 올리며 시중은행 차주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커진 데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이 촉발한 국내 금융시장의 신뢰 추락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이전 보다 부실채권이 줄었지만, 충당금을 더 쌓은 것도 이러한 위기 상황을 고려해서다.
 
실제, 5대 은행이 고정이하여신 대비 적립한 충당금 비중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농협은행의 경우 3분기까지 누적 적립한 신용손실충당금이 4372억원으로, 작년 한 해 적립한 충당금(3015억원)을 초과했다. 3분기 기준 은행별 NPL 커버리지 비율은 하나은행(207.3%), 우리은행(250.2%), 국민은행(252.2%), 농협은행(314.5%), 신한은행(196%) 등으로 부실채권의 2~3배의 충당금을 쌓아뒀다.
 
한 시중은행 위기관리 담당 임원은 "미국 중심으로 긴축 통화정책과 강달러 영향으로 잠재된 리스크가 발현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한도 관리를 철저히 하고 신용등급 리스크 요인을 고려해 여신을 관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편, 우량 차주 중심의 단기채권 매입으로 건전성을 관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은행이 다른 업권 대비 여력이 제일 큰 상황이고, 발생 가능한 리스크나 쌓아둔 충당금을 고려해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할 것"이라며 "ABCP의 경우 일반 채권 보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용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인 채권을 매입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ksj02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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