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모빌리티 시장 진입 본격화···자동차서 미래 활로 찾나
삼성페이, '디지털 키' 추가···문 여닫고 시동까지
삼성전기, 테슬라에 카메라 모듈 공급···전장 제품 확대
삼성SDI, 합작회사 설립·공급처 확대 박차
공개 2022-06-20 06:00:00
이 기사는 2022년 06월 17일 10: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삼성그룹의 자동차 관련 사업에 대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005930)는 차량용 디지털 키 서비스를 시작했고 삼성전기(009150)가 테슬라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삼성SDI(006400)도 전보다 활발하게 차량용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그룹 내에 전기차 관련 TF가 발족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미래 활로를 위해 본격적으로 전장 사업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9일부터 삼성페이(Samsung Pay)에 삼성패스(Samsung Pass) 서비스를 통합하고,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각종 기능을 순차적으로 추가하기로 했다. 삼성페이가 추가 예정인 기능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디지털 키(Digital Key)’다. 디지털 키는 사용자가 실물 열쇠를 직접 들고 다니지 않아도 삼성페이를 통해 집과 자동차에 출입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삼성페이 디지털 키를 활용하면 자동차 문 잠금·해제뿐만 아니라 시동까지 가능하다. 공유 기능을 통해 가족 등과 함께 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는 디지털 키 사용 가능 차량이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일부 차량과 BMW 등으로 많지 않지만 앞으로 적용 차량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페이 디지털 키 지원 차량 현황. (자료=삼성전자)
 
한지니 삼성전자 MX 사업부 Digital Life팀 부사장은 이번 서비스 확대에 대해 “삼성페이 업데이트를 통해 집·자동차·대중교통·문화생활 등 삶 전반에서 더 편리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더 큰 그림을 갖고 자동차 전장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는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가 없고, 그동안 자동차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던 삼성이 디지털 키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자동차를 생활에 필요한 하나의 가전으로 보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등이 확산하면서 집 전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관리하게 되고,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이 플랫폼을 차량과도 연결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자동차를 빼놓고 ‘스마트홈’을 논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가전을 연결·조작할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인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강화하고 있고, 이를 삼성페이와 연결할 방침이다. 세계적인 전기차 확대와 렌탈 서비스의 다양화 등으로 ‘자동차 구독 경제’가 활성화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그룹이 자동차 전장에 역량을 쏟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전장용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까지 공급 부족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기존의 차량용 반도체가 아닌, 전장용 ‘AI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사람 뇌를 닮아 인공지능 고도화에 필요한 복잡·다양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AI반도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최근 “자동차 산업에 AI반도체 역량 쏟겠다”라고 발표한 만큼 삼성전자도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최근에 테슬라와의 대규모 계약을 성사한 삼성전기의 사례는 삼성그룹이 전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테슬라의 전기트럭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 수주에 성공했다. 지난 1분기 말 진행된 수주전에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계약을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의 규모는 4조~5조원대로 전해진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기의 차량용 카메라 모듈 매출이 2000억원대라는 증권업계의 분석을 고려하면 20년치 매출 물량을 미리 따낸 셈이다. 
 
규모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계약에 성공한 부품이 ‘카메라 모듈’이라는 점이다. 카메라 모듈은 자율주행차 등 스마트카의 발달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전장용 카메라 모듈은 자동차가 외부 교통 환경을 알 수 있게 하는 ‘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장 카메라를 통해 확보한 정보가 자동차의 두뇌가 되는 프로세서로 전달돼 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모바일용 카메라 모듈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스마트카에 장착되는 카메라가 스마트폰보다 훨씬 많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인데,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카메라가 8개 이상이다.
 
삼성전기가 욕심을 내고 있는 자동차 전장 부품은 카메라 모듈뿐만이 아니다. 삼성전기의 주력 사업군은 △MLCC △반도체기판 △카메라모듈 등 3가지인데, 삼성전기는 MLCC와 반도체기판 사업에서도 전장용 제품 비중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MLCC(적층세라믹캐패시터)는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제어하는 핵심 부품이다. MLCC 사업이 포함된 컴포넌트 부문은 지난해 기준 4조771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전체 매출액의 49.3%를 차지했다. 삼성전기는 앞으로 전장용 MLCC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 부문 경쟁력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최근에는 고온·고압 등에 견딜 수 있는 고부가 전장 제품 13종을 개발하는 등 제품군 강화에 나섰다.
 
전문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MLCC는 800~1200개인데에 비해 자동차에는 6000~1만3000개의 MLCC가 들어간다. 테슬라의 경우 모델3에는 9000개 이상, 모델5에는 1만개 이상의 MLCC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기판의 경우도 첨단 반도체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자율주행차에 활용되는 인공지능(AI) 반도체용 제품 등을 출시할 가능성이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기가 자동차 전장용 제품 확대 전략을 통해 올해 매출 10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은 1조5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지난해보다 매출은 6.73%, 영업이익은 6.9%가량 증가한 수치다.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삼성SDI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24일 발표한 450조원 투자 계획에서 차량용 2차전지를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해 배터리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럽 출장길에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함께하면서 업계의 시각도 달라졌다.
 
해당 출장에는 최 사장뿐만 아니라 장혁 삼성SDI 연구소장·박진 중대형전지사업부장·김윤창 소형전지사업부장 등 삼성SDI의 중역들이 함께했다. 전문가들은 삼성SDI가 독자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전략이 아닌 합작회사 설립과 고객 다양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텔란티스의 경우처럼 완성차 기업 등과 합작회사를 만들 경우, 지분투자를 받을 수 있어 증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1일 독일에서 귀국한 최 사장에게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이 “수고하셨다. 큰일 하셨다”라는 축하를 전했다는 점을 볼 때 삼성SDI가 대규모 공급계약이나 합작회사 설립을 곧 발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최 사장이 출장으로 방문한 독일 뮌헨에는 BMW 등 완성차 업체의 본사가 있는데, BMW는 폭스바겐과 함께 삼성SDI의 주요 매출처 중 한 곳이다. 따라서 최 사장을 비롯해 삼성SDI 경영진이 BMW에 대규모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이뤄냈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BMW그룹은 가을부터 셀 제조 역량 센터를 새롭게 가동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중심으로 삼성SDI와 합작회사를 설립할 계획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삼성SDI 사업 부문별 매출 추이. (자료=삼성SDI)
 
삼성SDI의 지난 1분기 매출은 분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매출 4조원을 넘겼고, 영업이익도 3223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도보다 142% 증가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삼성SDI의 자동차 배터리 부문 매출이 2분기에도 2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그동안 LG그룹에 비하면 자동차 부문에서 소극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라며 “하반기에는 더욱 활발한 움직임과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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