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딜 나서는 낸드플래시 2·3위…삼성전자, 위기 극복 카드는?
일본 키옥시아-미국 웨스턴디지털 합병 추진
키옥시아 일본 상장 추진…곳곳서 M&A 승인 '난관'
쫓기는 삼성전자, 점유율·시너지 위협
공개 2021-09-08 09:30:00
이 기사는 2021년 09월 06일 06:00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최근 반도체 시장의 화두가 된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일본 키옥시아 인수가 삼성전자(005930)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일본 정부의 반대로 인수·합병(M&A)이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합병이 성사되면 두 회사의 합계 점유율은 삼성전자를 추월하게 되고 양사를 합쳐 발휘되는 시너지는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경쟁사의 움직임이 바빠지면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삼성의 대비 전략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6일 일본 일간공업신문(Nikkan Kogyo)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NAND flash memory) 생산 세계 2위 기업 키옥시아 홀딩스(Kioxia Holdings)는 현재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용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온 키옥시아는 그동안 미·중 무역전쟁으로 보류했던 기업공개(IPO)를 위한 시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혀왔다. 키옥시아가 11월 실시되는 일본 총선 이후 현지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판단해 상장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미국의 낸드플래시 세계 3위 기업 웨스턴디지털과 합병을 진행한다고 해도 실제 합병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IPO로 몸값을 키우고 투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 등 외신은 지난달 키옥시아가 웨스턴디지털과 200억달러 규모의 주식 합병에 대한 사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웨스턴글로벌과 키옥시아의 합병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 전략을 지원하게 될 양사의 합병을 승인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은 기업과 기업의 합병을 넘어 미국과 중국의 거래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과거 퀄컴 등의 사례를 볼 때 미국이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이번 합병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세계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항공·조선업계와 마찬가지로 주요국가 공정경쟁 감독 당국의 승인을 거치게 돼 있다. 주로 미국·중국·한국·일본·영국 등 6~7개국에서 심사와 승인이 이뤄지는데, 이 중 한 국가라도 승인 불가 판단을 내리면 인수합병이 불가능하다. 
 
반도체의 경우 중국이 세계 1위 소비국인 만큼 문덕이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8년 퀄컴의 NXP 인수와 2019년 어플라이머트리얼즈의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의 심사를 늦춰 최종적으로 인수가 무산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서도 승인을 미루고 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도 키옥시아 합병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전략에 동참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는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지난 2012년 마이크론과 합병한 반도체 기업 엘피다를 지키기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였었다”라며 “최근도 TSMC의 지원을 받는 등 자체 생산에 대한 의지를 보여, 하나 남은 메모리반도체 기업마저 외국에 판매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사의 합병 성사 여부도 주목되지만,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합병이 성사될 경우 삼성전자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에 쏠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기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33.5%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가 합병하면 합병회사의 점유율은 33.4%로 급등, 단숨에 삼성전자를 따라잡게 된다. 양사의 합병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해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작은 움직임에도 대비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점유율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양사의 합병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너지’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삼성의 신뢰도와 제품 수준 등을 고려하면 기존 고객사들에서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겠지만,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가 가진 반도체기업으로서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키옥시아의 전신(前身) 도시바 메모리는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기업이며, 웨스턴디지털은 하드디스크부터 저장 장치 외길을 걸어온 기업이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가진 양사가 뭉치면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좋은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김 전문연구원의 판단이다. 
 
김 전문연구원은 “저장 장치로서의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상호 보완을 통해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한다거나, 다른 용도의 제품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라며 “이러한 시너지가 발현한다면 눈에 보이는 시장 점유율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로 삼성전자 등 경쟁사를 위협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합병이 이뤄질 경우, 삼성도 현재 점유율이나 고객사 네트워크만으로 안심할 수 없으며, 낸드플래시 부문의 추가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역시 3년 이내에 의미 있는 수준의 인수합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며 양사의 합병에 주목하고 있다”라며 “합병이 진행될 경우 삼성전자의 인수합병·투자 시기도 빨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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