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 면담 이후 삼성·SK·현대차·LG 등 대기업들이 연달아 수백조 단위의 투자 계획과 대규모 채용안을 내놓고 있다. 외형 확장과 미래 전략 확보라는 명분이 깔려 있지만, 각 그룹의 실적과 재무여력에 비해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업의 견조한 현금 창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와 채용은 지속될 수 없다. 이에 <IB토마토>는 주요 그룹의 투자 능력과 본업 성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역량을 점검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삼성그룹이 향후 5년간 45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와 6만명 신규 채용을 공약하며 공격적 투자 드라이브에 나섰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 기대감 속에 평택사업장 5라인 골조 공사까지 결정하며 선제적 투자 의지를 드러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지만 투자 재원 마련과 관세 변수라는 숙제가 남아 있어 시장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중장기 반도체 수요 대비”…450조 투자 선언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을 포함한 국내 투자에 총 450조원을 투입하고 같은 기간 6만명(연평균 1만2000명)을 채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삼성이 내놓은 투자 규모는 직전 5년(2020~2024년) 누적 투자액 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설비투자(CAPEX)로 243조원을 지출했다. 여기에 같은 기간 R&D 비용(132조원)까지 합산하면 총 375조원이 넘는다. R&D 비용이 국내외를 합산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해도 전체 투자 규모가 확대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3~4년간 호황 사이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평택사업장 2단지 5라인의 골조 공사를 시작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중장기 수요 증가에 발맞춰 생산라인을 선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의 영업현금흐름은 시장 회복에 따라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2023년 44조1374억원에서 지난해 72조9826억원으로 65.35% 증가했다. 올해는 75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측은 450조 투자 계획 발표와 관련해 “AI 반도체 수요 폭발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확대에 따라 중장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안정적인 생산 인프라 확보를 위해 각종 기반 시설 투자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450조원은 삼성전자의 현금창출력이 안정적으로 회복되는지가 향후 투자 지속 여부를 결정할 핵심 요소”라며 “반도체 단일사업 기반의 변동성이 큰 만큼 연간 영업현금흐름이 꾸준히 늘지 않으면 계획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대규모 투자 계획 재원 마련은
다만 반도체 부문의 HBM 경쟁 열위와 파운드리 적자 지속으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해도 예년보다 커진 투자 집행 규모를 고려하면 재원 마련이 핵심 변수로 꼽힌다. 반도체 투자 비용은 대부분 선투자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올 3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투자에 투입할 수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등을 합친 유동성 자산은 약 100조원 수준이다.
결국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들은 회사채 등 외부 자금 조달에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며 오랜 기간 무차입에 가까운 기조를 유지해온 만큼 이번에도 자체 현금흐름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21년 5년 만기 글로벌본드 발행 이후 채권 발행은 전무하다. 일각에서는 투자 강도를 극대화하려면 그룹 차원의 자금 조달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함께 국내외 정책 리스크도 부담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며 현지 생산 요구를 높이고 있어 글로벌 투자 지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장기적으로 투자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공을 들이는 현금흐름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재원을 적기에 마련할 수 있을지가 향후 투자 지속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내년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136% 증가하는 등 실적 상승이 예상된다”며 “다만 HBM4의 조기 인증에 실패하거나 메모리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되는 리스크는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